1.3.3. 주교 연대성과 교회 일치
주교 연대성에 관한 교의는 종교 일치를 위해서 몇가지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와 동방교회 신학에 매우 어렵다.
첫번째 문제는 주교 연대성의 성서적 토대에 대한 문제 제기다. 루터파 교회측의 공의회 참관자였던 Kirsten Skydsgaard는 도대체 언제 사도들이 연대적으로 행동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동방교회의 Nissiotis는 연대성은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근거가 모호한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두번째 문제는 주교서품이 신품성사의 충만이라는 성사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Gottfried Maron은 개신교 신학 측면에서 주교서품의 성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신약성서에서의 직무는 아주 단순했다는 것이다. 이 서로 다른 위계로 발전된 직무는 하나의 직무 전체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문제는 베드로를 머리로 하는 단체로서 12사도의 공동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Gottfried Maron이 제기한 이 문제는 주교의 연대성은 결국 교회의 수직적인 성직자 중심화와 교회 개념을 위계 제도로 새롭게 고착시킨다는 것이었다. 공의희의 시각은 본당과 공동체 중심의 교회를 주교 중심으로 바꾸어 놓아 공동체적이고 전례적인 전체교회 삶을 주교 중심화 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기 위해 우리는 불가피하게 초대교회의 구조에 눈을 돌려야 한다. 공의회의 연대성 사상의 기초도 사실은 초대교회의 구조의 재발견에 있었다. 초대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전면에 부각된 용어 ‘Ecclesia’라는 말의 의미는 지역교회였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교회 실재 전체를 포함하는 각각의 지역교회에서 실현된다. 유일한 하느님의 교회를 이루는 많은 지역교회들은 주교들의 수평적인 결합으로 연결된다. 주교들의 결합은 성찬의 끈을 통해 보존되었다. 초대 교회에서 전체교회의 일치는 이러한 주교들 상호간의 결합 안에서, 주교직은 주교들의 성찬 공동체 안에서 유지되었다. 이 초대교회의 개념의 재발견이 공의회의 주교 연대성 교의가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핵심이었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우리는 주교단의 신약성서적 근거를 계속 밝혀야 한다. 대체로 3세기부터 주교직의 공동체성을 지칭하는 말로 ‘단체(collegium)’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동시에 위계(ordo), 단(corpus), 형제성(Fraternitas)이라는 말도 통용되었다. 이 ’단체‘라는 말이 바로 신약성서적인 원천을 가지고 있다. 즉 이 직무의 공동체성은 신약성서적인 봉사의 토대로서 12사도 공동체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12사도에 대하여 명백히 단체 즉 항구적인 집단의 형태로 그들을 주께서 선정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주교 연대성 개념의 재발견은 공의회가 얻은 커다란 성과의 하나였다. 우리는 연대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유지하지 못하고 경직화하거나 축소화, 특히 주교직의 확대해석으로 사제직과 평신도의 역할이 축소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연대성 사상이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을 위한 자리가 있고 또 그것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주교들의 성사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의회는 주교 연대성의 두 가지 토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토대는 서로 떨어질 수 없게 결합되어 있다. 주교는 성사적 서품을 통하여, 그리고 주교단의 머리와 구성원들과의 일치를 통하여 주교단의 일원이 된다. 즉 따라서 주교단은 먼저 주교서품으로 인해서 성사적으로 형성된다. 주교단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결합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성은 나아가 실질적으로 교황과 다른 주교들과의 공동체 안에 실현된다. 연대성은 교황에 의해 부여되는 재치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인 소여인 것이다. 주교직무의 이러한 성사적 근거는 바로 성사적으로 규정되는 교회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질서와 영적인 신비가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교 연대성은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보증하는 도구요 수많은 지역교회로부터 하나인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하는 표지인 것이다. 이 연대성은 서로 다른 유형으로 실현될 수 있다. 고대교회에서 그 모습은 서로 다른 시노드의 형태, 또 총대주교좌의 형태로 드러났고 오늘날은 주교회의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분명히 드러난 사실이지만 개신교 교회는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교와 교황을 가진 교회를 그 자체가 합법적으로 계승된 교회라고 보고 있었다.
그 개신교 교회가 가톨릭 교회로부터 탈퇴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확신에서였다. 즉, 가톨릭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는 교회 가르침의 유지를 소홀히 한, 또 그 유지 방식이 불명확했다는 확신에서였다. 이것을 전제로 개신교 교회는 고대교회의 여러 요소, 세례, 복음의 설교, 성찬식 등이 종교 분열 이전에 있어서도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였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가톨릭 교회도 다음의 사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즉 중세 이후의 교회에서 교회 생활과 실천, 그 정신에 있어서 개신교 교회가 비판하듯 교회 본래의 모습에 많은 모순된 경향이 존재했던 것, 그리고 그와 같은 경향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요청되었던 교회 발전에 심각하게 거역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탈퇴의 정당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사실은 가톨릭 교회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탈퇴뿐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탈퇴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히 고찰되지 않았다. 주교 연대성 교의는 이제 겨우 시작일 수 있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진은 제 2차 Vatican공의회의 일치운동을 위한 하나의 성과라 할 수 있고, 교회 스스로 내적인 개혁의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