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章 敎會의 役割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정식(역사적 전개)

 

2.1.1 역사적 전개


창세기 1~11장의 원역사는 이미 ‘거룩한 이방인’을 알고 있다. Abel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선인들의 전형, 교회를 미리 예표하는 인간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bel은 교회의 최초, 원초의 가능성으로 인식되고 Abel의 이후로 ‘Abel로부터의 교회’라는 말이 가능하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에 관한 보고는 우리 주제의 실마리이다. 후기 유다이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모델로 이 보고를 고찰하고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배를 남은 자들의 종말적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다. 나무라는 표상은 교부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는데,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나무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신약성서는 교회의 구원의 배타성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신앙이 구원의 전제임을 밝히고 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Mr16,16)


또한 사도행전 4,12은 구원이 주님이신 예수와 결합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는 정식(Extra ecclesiam nulla salus)’은 Origenes(+253/254)와 Cyprian(+258)에서 처음 나타난다.


Origenes는 창녀 라합(여호 6, 24이하)의 구원에 관한 여호수아 설교를 인용하면서 라합의 집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해냈다: “유일한 그 집 밖, 즉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교회 밖으로 나가면, 그는 자기 죽음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1)


Cyprian는 교회의 분열을 염려하면서 한 주교를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유지할 것을 호소하면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누가 교회로부터 이탈하여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면 그는 교회에 주어진 약속으로부터 제외된다. 그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모실 수 없다. 누가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깨뜨리면, 그는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것이며, 교회밖에서 모이는 것은 그리스도교회를 파괴하는 것이다.”2) 나아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3)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정식은 Augustin의 제가들에게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Fulgentius v. Ruspe (468~533)이 대표적이다:


“다음의 사실은 의심 없이 가장 명백하다. 모든 이방인 뿐아니라 모든 유대인, 모든 열교인과 이교인들, 즉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악마들과 그 졸도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속에 떨어질 것이다.”4)


중세기에 와서 이 사상은 더욱 심화된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회칙 Unam Sanctam(1302)는 노아의 배와 연결하여 교회가 구원에 불가피함을 선언하고 있고, 마침내 Florenz 공의회는 Fulgentius의 표현을 빌어 이 정식을 선포하고 있다: “교회밖에는 아무도, 이방인 뿐아니라 유대인이나 열교, 이교인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악마와 그 졸도들을 위해 준비한(Mt 25,41) 영원한 불속에 떨어질 것이다.”5)


Jansenius(1585~1638)6)과 그 추종자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죽은 것이다”고 주장했고7) Jansenismus의 영향을 받은 P. Quesnel(1634~1719)는 “교회 밖에는 아무런 은총도 있을 수 없다”8)고 주장했다. 이 두 주장은 교회로부터 단죄되었다.


이렇게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는 인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과 결부되어 있다.


첫째, ‘아벨로부터의 교회’라는 사상이 아우구스티노 학파와 결부되어 교회의 배타성이라는 엄격한 개념으로 발전되었던 것.


둘째, 고대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셋째, 이 정식은 이 정식만 따로 떼어내서 고찰하기보다는 교의역사 전체의 발전과 결부시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식에 대한 본격적인 숙고와 교회의 공식적인 표명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교황 Pios Ⅸ는 1854년 자신의 훈화 ‘Singulari quadam’에서 두 가지 사실을 구별하고 있다. 즉 로마 가톨릭교회에 소속하는 것이 교회에 대한 무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교황은 자신의 회칙 ‘Indifferentismus(무관심)’에서 “참된 그리스도 교회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은 희망할 수 없다”9)고 말하면서 또한 “불가피한 무지로 참된 그리스도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적인 법과 계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10)고 선언하고 있다.


교황 Pius Ⅻ는 ‘그리스도 신비체 회칙(1943’에서 교회의 구성원에 대해 말하면서 성사와 교회가 필연적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 명시적으로 속하지 않지만 신앙과 사랑안에서 정의를 실천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삶의 열망을 통해 구세주의 신비로운 몸에 이를 수 있다”11)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회칙의 내용에 대한 오해가 교회 내에서 엄격 주의를 불러일으켰는데 1949년 소위 Feeney사건이 그것이다.


미국 Boston교구의 한 평신도 신학교수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가톨릭교회에서 세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자 Boston교구에서 이를 문책하고 교수 자격을 박탈하였다. 이에 그 대학 기숙사 사감 신부였던 L.Feeny신부가 그 교수를 지지하면서 모든 비가톨릭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Boston교구에서는 이 문제를 교황청에 문의하게 되자 경사성성은 이를 숙고하여 답변서(‘Sanctum Officium’)를 보냈다.


: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제로(Reapse) 교회의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원의와 지향(desiderio et voto)으로써 교회와 관련되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원의는 예비 신자처럼 명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무지의 경우에는 암시적인 원의, 즉 하느님의 뜻에 맞같는 삶에의 원의도 가능하다.”12)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여 교의로 선포하고 있다.


먼저 선교교령은 우선 간접적으로 구원의 보편성을 선언한다.: “본인의 탓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록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에로 이끄실 수 있으시긴 하지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과 성스러운 의무를 아울러 갖는 것이며, 이로 인해 선교 활동은 항상 변함없이 오늘도 그 힘과 완전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13)


교회 헌장은 실제로(reapse) 가톨릭교회의 구성원뿐 아니라 원의(in voto)로써 교회와 결합된 사람들, 나아가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과 유일신을 신앙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마침내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천명하고 있다.


①그리스도께서 가톨릭 교회를 세운 것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거나 교회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몸으로만 머물러 있고 마음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구원될 수 없다. 교회에 결합되려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한 예비자들은 그 원의로(in voto)a이미 교회와 결합된다.14)


②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은 완전한 신앙, 성사, 로마 교황과의 일치라는 세요소를 다 갖추지 못하지만, 그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와 결합되어 있으며 구원될 수 있다.15)


③그밖에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와 관련되어 있다.


유일신을 신앙하는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도 구원될 수 있다.


또한, 자기탓없이 참 하느님을 모르지만 양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도 구원은 가능하다.16)




사목헌장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면서 구원의 보편성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 “이것(구원)은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 인간이 불린 궁극 목적도 사실은 하나뿐이며 …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17)


1442년 Florenz공의회가 선언한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는 정식이 제2차 Vatikan공의회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구원 가능성의 선언으로 극복된 것은 교의의 오류가 아니라 교의 발전의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두 가지 커다란 역사적 경험이 공헌을 하였다.


첫 번째는 , 신대륙과의 만남이다. 15C말부터 이루어진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와의 만남은 유럽에서 근대를 열게 되었는데 특히 동아시아에서 고도로 발달된 문화와 종교를 체험하게 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시각으로부터 이러한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명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멸망된다는 생각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하나는, 서구 사회에서 전개된 16C 종교분열의 여파였다. 종교분열은 또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인식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가톨릭교회의 승리주의와 자만심을 숙고하게 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두가지의 경험이 18C에 유럽에서 계몽주의를 태동하게 한다.


가톨릭교회의 이 내외적인 경험이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는 정식을 심사숙고하게 하였고 결국 교의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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