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향
일치에 대한 열망의 충격은 교령의 수준을 넘어섰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른 문헌들(예를 들면 선교교령,AG)을 통틀어 교회 쇄신을 가늠하는 중요 관점이 되었다. 일치 교령이 교회일치를 공의회나 여러 나라의 가톨릭교회 생활의 중요한 부문으로 재빠르게 규정했다는 것은 그 중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여간 이것은 강력한 희망과 성급한 약속이라는 두 갈래로 평가되어 왔다. 1987년 윌러브란트(Willebrands) 추기경은 공의회 이후의 대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쓰여지고 있는 새로운 글의 문맥’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전개되는 교회일치를 위한 첫 단계 일 뿐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 일치적인 사고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교령은 무슨 일이 이미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진실로 혁신적인 것이기에 이것이 교회 안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속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로써 하나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고, 낙심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전통은 저항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공의회 이후 교회일치를 위한 활동이, 그 다양성에 놀라겠지만, 본당이나 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식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공의회가 개최 된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교회일치 운동이 그 추진력을 잃고 있다고 느낀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일치를 열렬히 갈망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일치에 대한 겨울의 찬바람’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엄습했다고 까지 말한다.
공의회 이후 개혁을 추구하는 거의 모든 개신교 교회들을 포함해서 국가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더욱이 교회일치를 위한 몸짓은 대중 전달 매체와 대중 집회,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 시 일상사가 되었다.
공의회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이 발생했다. 그 누구도 교회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의식 개발의 속도를 예상할 수 없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많은 대화들이 지방별로 이루어졌다.
교회들 안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들은 공의회에서 상상했던 일치를 위한 의제들을 앞서 나가게 되었다. 1985년까지 세계 시노드에 참가한 주교 중에 60%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온 주교들이었다. 그들은 젊은 교회들의 필요에 따라 세계적인 빈곤 문제, 정의, 토착화와 환경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들에 관심을 가졌다. 또 하나의 요인은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 적이고 성령 부흥 적인 교회들이 급격히 성장하고, 근본주의자들이 그들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교회일치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영향으로 타교회들과 함께 일하려는 노력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리버풀의 두 주교, 데렉 월록(Derek Worlock) 대주교와 데이비드 셰퍼드(David Sepherd) 주교는 위에서 언급한 떼제나 아이오나, 코리밀라 그리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로간의 신앙의 나눔을 실천하는 그 밖의 많은 사례들과 함께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

6. 영향
일치에 대한 열망의 충격은 교령의 수준을 넘어섰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른 문헌들(예를 들면 선교교령,AG)을 통틀어 교회 쇄신을 가늠하는 중요 관점이 되었다. 일치 교령이 교회일치를 공의회나 여러 나라의 가톨릭교회 생활의 중요한 부문으로 재빠르게 규정했다는 것은 그 중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여간 이것은 강력한 희망과 성급한 약속이라는 두 갈래로 평가되어 왔다. 1987년 윌러브란트(Willebrands) 추기경은 공의회 이후의 대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쓰여지고 있는 새로운 글의 문맥’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전개되는 교회일치를 위한 첫 단계 일 뿐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 일치적인 사고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교령은 무슨 일이 이미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진실로 혁신적인 것이기에 이것이 교회 안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속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로써 하나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고, 낙심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전통은 저항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공의회 이후 교회일치를 위한 활동이, 그 다양성에 놀라겠지만, 본당이나 국가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식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공의회가 개최 된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교회일치 운동이 그 추진력을 잃고 있다고 느낀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일치를 열렬히 갈망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일치에 대한 겨울의 찬바람’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엄습했다고 까지 말한다.
공의회 이후 개혁을 추구하는 거의 모든 개신교 교회들을 포함해서 국가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더욱이 교회일치를 위한 몸짓은 대중 전달 매체와 대중 집회,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 시 일상사가 되었다.
공의회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이 발생했다. 그 누구도 교회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의식 개발의 속도를 예상할 수 없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많은 대화들이 지방별로 이루어졌다.
교회들 안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들은 공의회에서 상상했던 일치를 위한 의제들을 앞서 나가게 되었다. 1985년까지 세계 시노드에 참가한 주교 중에 60%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온 주교들이었다. 그들은 젊은 교회들의 필요에 따라 세계적인 빈곤 문제, 정의, 토착화와 환경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들에 관심을 가졌다. 또 하나의 요인은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 적이고 성령 부흥 적인 교회들이 급격히 성장하고, 근본주의자들이 그들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교회일치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영향으로 타교회들과 함께 일하려는 노력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리버풀의 두 주교, 데렉 월록(Derek Worlock) 대주교와 데이비드 셰퍼드(David Sepherd) 주교는 위에서 언급한 떼제나 아이오나, 코리밀라 그리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로간의 신앙의 나눔을 실천하는 그 밖의 많은 사례들과 함께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