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계
‧선교교령의 신학은 어느 면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어떤 때는 선교활동의 중심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고, 따른 때는 제도적인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 교령은 조직이나 자원이 부족한 제3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보내면서 성숙한 유럽이나 북미 교회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30년간 서구 교회는 사제 및 수도성소의 부족과 약화 그리고 쇠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지역교회들을 더 이상 ‘보내고’ ‘받는’ 교회로 분리할 수 없으며, 오늘날의 선교는 정말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유럽과 북미도 당연히 선교 지역으로 봐야 할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교회도 잠재적으로 선교를 보내고 선교를 받는다. 이것은 선교 지원자를 모집하는 실재적인 지리상의 모양과 목적지를 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선교교령에서 미쳐 예견하지 못했지만,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국가였던 나라들에도 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