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의이해-그리스도인의생활을위 畸냅그리스도교-다른공의회(현대 세계와 교회)

 

3. 현대 세계와 교회


사목헌장과 이와 연관된 문헌들은 교육받은 성인 평신도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그리스도교인의 성숙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스 메디아에 관한 교령’ 3항은 그리스도교인의 교육과 매스 메디아의 이용이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3항은 ‘진리는 인격과 그 사회성에 고유한 방법, 즉 자유로운 탐구, 교도 혹은 교육, 전달 및 대화의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자기가 발견했던지 혹은 발견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른 이에게도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진리를 안 이상에는 개인적 승인으로 굳이 이에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진리에 비추어서 사물을 판단하며,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진실 되고 정당한 것은  무엇이나 추구하도록 힘쓰며, 타인과 즐겨 협조하는 인간 육성에 힘써 달라고’ 권장한다(종교 자유8). ‘하느님은 당신을 영과 진리로 섬길 사람을 부르신다. 그러기에 인간은 이 부르심으로 인해서 양심적으로 속박 당하지만 강제 당하지는 않는다. 사실 인격이란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고 자유를 향유하는 것인데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격의 이 존엄성을 고려하신다’(종교 자유11).




역동적인 접근


사목헌장은 공의회의 성인 교육에 대한 이해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헌장은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이들을 해석하는 것을 의무라고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인생과 후세의 인생 자체의 의의와 그 상호 관계에 대하여 사람들이 품고 있는 끝없는 의문에 그 세대에 알맞는 방법으로 대답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4).


정적인 세계관에서 동적인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새로운 분석과 새로운 종합을 요구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5). ‘신앙이야말로 모든 것을 새로운 빛으로 밝혀 주지만’(11), 지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15).


신앙인들은 무신론의 발생에 책임이 있는데, ‘자신들의 신앙 배양을 등한시하거나 교리를 잘못 설명하거나 종교생활, 윤리생활, 사회생활 면에서 결점을 들어냄으로써 하느님과 종교의 참 모습을 보여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19). ‘생생하고 성숙한 신앙’의 증거가 무신론을 시정하는 길이며(21), ‘생의 의의와 희망의 근거를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손에 인류의 미래 운명이 달려 있다’(31).


‘교회는….개개의 문제에 언제나 즉각적인 해답은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근에 인류가 걷기 시작한 행로를 비추어 주기 위해서 계시의 빛을 모든 사람의 경험에 결부시키고자 한다’(33). 이것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더 완전한 인간이 되는’ 영적인 굶주림에 동참하는 것과 관련된다(41).




성숙


의미를 말한다면 ‘신도들이 영적 빛과 힘을 사제들에게 기대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목자들이 모든 일에 정통하여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아무리 중대한 문제가 생기든지 언제나 즉석에서 구체적인 해답을 줄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신도들은 그리스도교적 지혜의 빛을 받아 교권(敎權)이 가르치는 바를 깊이 염두에 두고 그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41).


교회는 현대 세계를 도울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것은 ‘현대 세계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분별하며 해석하고 복음의 빛으로 판단함으로써 계시된 진리가 항상 더욱 깊이 알려지고 더 잘 이해되고 더욱 적절히 표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의무이며 특히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44).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형제와 역사에 대한 책임 수행에 입각해서 인간을 규정지을 새로운 휴머니즘의 증인들이 되는 것이다’(55). 이 말은 신앙과 문화를 분리하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목활동에 있어서는 신앙의 원리뿐 아니라 세속학문,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의 발전들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자들도 보다 순수하고 보다 원숙한 신앙생활로 인도될 것이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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