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론의 문제 제기(상)

 

제 1장 현대 교회론의 문제 제기




우리가 교회에 대해 말할 때 그 전제는 ‘신앙’이란 말이다. 신앙은 교회의 토대를 이루는 말로서, 신앙을 전제로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신앙과 교회를 분리해서는 안된다.


신앙 교리 성성 장관이신 J. Ratzinger 추기경은 자신의 저작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에서 오늘날의 ‘신앙’문제를 후련하게 다루고 있다. 19세기말, 세상의 정신사조를 압도하고 있던 Modernismus와 자유주의 사조로 인해 신앙과 교회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각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A. V. Harnack, Das Wesen des Christentums.


U. Adam, Das Wesen Katholicismus.


그 이후 1차대전, 2차대전, 제 2차vat공의회, Post-Modernism


→J. Ratzinger, ‘Einguturing in das Christentum’.


이 책 서두에 오늘날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린 신앙을 이제 세상에 증거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막힌 비유를 멋지게 도입하고 있다.


바로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이야기이다.


덴마크를 순회하던 한 곡예단에서 공연 중에 불이 났다. 경황이 없던 중에 단장은 이제 막 분장을 끝낸 광대를 마을로 보내 불을 끄도록 사람들을 부르러 급히 보냈다. 추수가 끝난 전답에 불씨가 옮아 번졌다가는 그 마을에도 불이 번질 위험이 많았다. 광대는 급히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호소를 관객들을 유치하려는 곡예단의 기발한 수법으로 보고 박장대소를 하였다. 광대는 기가 막혀서 정말이라고 우기고 이것은 장난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허사였다. 오히려 광대의 이러한 절박한 호소는 더 기막힌 연기로 여겨질 뿐이었다. 결국 불길은 마을에까지 번져서 손을 쓸 겨를도 없이 곡예장·마을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 광대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광대는 광대옷을 둘러 입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무슨 소릴 하든지 판에 박힌 광대질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빤한 소리를 하는 광대의 이야기는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다. 광대의 말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묘사는, 오늘날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처한 곤혹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절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오늘날, 신앙이라는 말은 이미 타성에 젖어버려 더 이상 흥미 있게 들리지 않고 신앙 내용이 바로 인생과 상관이 있다는 점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체험하는 곤혹이다. 서구에서는 오늘날 도대체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근본문제가 다시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늘날 신앙에 대해 말하기가 본격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자들에게는 불안의 위협이 있다. 신자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수없이 불신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바로 세상의 불의와 고통앞에 침묵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체험하는 불신이다. 그리고 말라기 예언자는 그 불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 섬겨 보아야 다 쓸 데 없는 일이다. 하느님 말씀 들어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더냐, 하느님 앞에 울며 호소해 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더냐. 결국 지 살고 싶은 데로 살아야 살길이 트이는 세상인데 , 못된 짓을 해야 성공하는 세상인데, 하느님 무시하고도 멀쩡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말라기 3,14-15)


도대체 하느님이 어디 계신가,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하바꾹 예언자의 탄식이 오늘날에도 생생하다.


“야훼여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 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 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하바꾹 1,2-4)


악인들이 득세하고ㅣ 계신가. 이렇게 하느님의 不在현상, 이것이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의 주류이다.


한편 비신자들에게는 혹시 라도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는 두려움의 위협이 있다. 어떤 계몽주의자가 신이 없다는 것을 논쟁하기 위해 한 사제를 찾아갔다. 사제의 거실에 들어서 보니 사제는 사색에 깊이 잠겨 책을 들고 방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드디어 걸음을 멈추고 방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힐끗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그렇지만 혹시 옳을지도 모르지” 찾아간 학자는 갑자기 속으로 소름이 확 끼쳤다.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도 무섭게 들렸다. 학자는 맞서 보려고 속으로 안간힘을 다해 보았으나, 매번 그놈의 ‘혹시’라는 무서운 말에 부딪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이렇게 비신자들은 여전히 ‘혹시’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비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의 주류이다.


→Anselmus(1033-1109)의 본전 논쟁


이 두 입장,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과 비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의 간격에서 이제 믿는다는 행위가 가능하게 된다. 인간은 신이 아닌 것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무한한 심연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여 있다. 여기에다가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이라는 간격의 심연이 더해지게 된다. 과거에는 ‘전통’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규범이었고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테두리가 되었지만 오늘은 이미 전통이라는 개념이 끝장나 버린 어제의 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공간이 주는 간격에서 오는 1차적 곤혹과 어제와 오늘이라는(전통과 진보) 시간의 간격에서 오는 2차적 곤혹이 현재의 우리 무대를 규정하는 조건이 된다. 이러한 기본 토대 위에 오늘날 과학주의에 물들어 있는 우리의 기본 태도는 모든 것을 현상으로, 드러나고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국한시켜 버리는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사물의 숨은 자체를 찾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을 포기하게 되었다. 인간이 보고 듣고 만지는 것만을 현실의 전부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을, 세계를 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신앙, 즉 믿음이 뜻하는 바의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현대를 규정짓는 조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대략 지금부터 1600년전인 375년, 성 바실리오는 당시의 교회가 처한 상황을 ‘해전’에 비유하고 있다. “함대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혼란에 처해 있다. 짙은 어두움이 시야를 막고 있고, 선장 소리도 조타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우성 속에 피아 구별도 전혀 되지 않는다.” 이 375년이라는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마 박해 시대에 가톨릭 교회는 대체로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있었다. 혹독한 박해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불타는 신앙의 열성 때문에 가능했다. 313년 로마 황제 Constantinus에 의해 종교 자유를 얻게 되면서 이제 가톨릭 교회는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신앙에 대한 열정이 식어졌고 주변의 여러 이교 문화와 뒤섞이게 되어 세속 속에서 현실과 타협․안주하게 됨으로써 신앙과 교회의 순수성이 점차 퇴조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현상은 395년 황제 Teodosius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됨으로써 한층더 발전, 심화되게 되었는데, 박해시대, 오직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공동 운명의 연대감이 또한 교회의  일치까지 잘 보존해 주었던 반면, 바실리오 당시의 교회는 그러한 공동운명체에 대한 연대감이 약해지면서 또한 교회의 일치까지 흔들리게 되고 Arius니, Nestorius니, Mani교 같은 수많은 이단설이 창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4C의 상황, 4C의 이 바실리오의 비유는 놀랍게도 오늘날의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 현대 신학자들은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고 있다. 오늘날 신앙과 교회의 순수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교회의 일치 자체까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분기점을 이루는 중심에는 바로 1962-1965까지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제2차 Vatican공의회가 서있다. 공의회는 놀라우리 만치 선명하게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사조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교회 내에 새로운 정신사조의 출발은 이미 20C초반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1년, 독일의 종교철학자 R. Guardini(1885-1968)는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선언적인 말을 했는데 이 말이 바로 이어진 수많은 가톨릭 개혁운동의 구호가 되었다. “극히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다.”


1차 대전으로 인류의 파멸을 체험한 사람들은 다시금 새롭게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되었는데 이것은 근대주의 마지막 사조였던 Modernism과 자유주의의 극단적 개인화가 결국 인류의 파멸이라는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는 각성의 결과였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가톨릭 개혁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다. 독일을 중심으로한 청년운동을 필두로 성서운동, 전례개혁운동,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 평신도 사도직 운동, 동방교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 종교일치운동 등 한마디로 성서와 원천에로의 회귀운동이 교회와 신학 전반에 걸쳐서, 또 한편으론 각종신심운동, 성령운동, 꾸르실료, 훠꼴라레, 레지오마리애, 성서모임, 성체와 자유운동, 성모의 기사회 등등이 교회 밑바닥에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이시기에 신학자들도 거장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사실 2000년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영웅적인 신학자들이 출현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체로 세번, 첫 번째는 초기 교회의 교의들이 정리되던 시기의 수많은 교부들로 대체로 400년 전후의 시기다. 이 시기의 대표자는 두말할 것 없이 Augustinus(354-430)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뒤 800년 후인 1200년 전후 중세 신학의 전성기에 출현했던 학자군의 시기. 이시기의 대표자는 Thomas Aquinas(1225-1274)이다. 그 뒤 종교개혁(1517-1521) 전후와 19C초, 중엽 Tübingen학파를 비롯한 학자군이 출현하였으나 본격적으로는 Thomas이후 또 약 800년 후경인 1900년 중반 수많은 거장들이 다시 출현한다. K. Adam을 필두로 R. Guardini, H. de Lubac, Y. Congar로부터 J. Ratzinger에 이르기까지, 이시기의 대표자는 아무래도 K. Rahner라 할 수 있겠다. J. Ratzinger추기경은 1920-1960년까지의 40년 동안을 감격과 희망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는 가히 신앙과 신학 그리고 교회 생활 전반에 걸쳐서 진지한 반성이 대두되었고 현대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를 재각성했던 벅찬 시기였다. 그리고 제2차 Vatican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렇게 R. Guardini의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각성의 결실이 제2차 Vatican공의회였다.


역사 안에서의 교회 이해의 논쟁과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 교회론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단편들을 살펴보고 오늘날 교회론의 과제를 제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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