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생활의 실천적 전망

 

1. 제도적 측면




오늘날 인간의 애정 성향에는 이성애(異性愛)와 동성애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독신도 두 가지로 이야기해야 하는가? 과연 다양하게, 심지어 서로 상반되는 방법들로, 생활화되는 그런 투신도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같은 실천은 심각한 난관들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분명히 교구와 수도회 및 신학교는 완전하고 순결한 독신 생활에의 투신을 제대로 실현하는 행태(行態)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으며, 그 이해한 바를 제시하여 사제와 신학생이 독신 생활의 진가에 내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다른 덕목들과 마찬가지로 독신 생활은 하한선(下限線)을 지닌다. 최상층에 있어서 독신 생활이 지니는 의미는 신학적이요 영적이요 수도적이다. 문제의 이 측면이 최정상을 차지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이것이 인간의 가장 고결한 동기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우 이 점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곳은 신학교와 사제 교육 현장이다. 그러므로 영적 내지 수도적 교육이 보다 심도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면 하한선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안된다.


신학교와 교구 또는 수도회에서 실질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정화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신학생과 사제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니다. 독신은 일종의 제도적 투신을 의미하며 따라서 독신의 의미에 하한선을 분명히 명시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신학교와 교구 및 수도회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학생과 사제 또한 이 문제에 상당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사제직은 공동체적 은사이므로 사제가 자신의 투신을 아주 훌륭하게 하느냐 아주 형편없이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가 소속된 성직과 성직의 평판이 그대로 반영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사제와 신학생은 보편적인 평판에 부분적으로 공동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독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고매하면서도 빈틈없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독신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제도적 명확성으로 축소하거나 법규 제정과 동격시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독신적 투신을 뒷받침하는 적극적이고 제도적인 기본 원칙도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 기본 원칙은 또한 적재적소에 적응되지 않으며 안된다. 그런 기본 원칙이라야 선명한 시각을 낳는다.


제도상에서 사제의 개인적인 투신은 영혼이 쉬고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일정 기간의 피정과 묵상으로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독신 생활을 포함한 사제의 투신은 온전한 힘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이상의 주제들을 단일한 표제로 엮어 놓을 수 있다. 즉 교회는 남성들에게 사제직에 몸 담고 독신에 투신하도록 초대하고 철저한 자기 헌신을 요구한다고 할 때, 그 자신 스스로도 그와 동일한 투신을 통해 사제 생활, 독신 생활을 꾸준히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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