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성서에 나타난 독신의 의미

 

Ⅱ. 성서에 나타난 독신의 의미




1)구약성서


구약에서 동정(童貞)은 일반적으로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더욱이 불임(不姙)처럼 동정은 하나의 어떤 결핍으로 여겨졌다.1)


한편 결혼은 영예로운 축복이고 필수적인 대사(大事)로, 또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2)으로 생각하였다. 구약성서가 하느님만을 변함없이 충실하게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처녀성, 동정성의 가치와 종교적 의의를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예레미야 예언자 단 한 사람 이외에는 이미 전제한 엄밀한 의미의 독신 생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경우에도 하느님이 예레미야가 후손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피하게 하려고 결혼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을 뿐이며, 이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 부녀와 어린이들의 학살이라는 큰 벌이 목전에 도달하였음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예레16,1-4. 10-13).3)


그런 예레미야 자신도 그의 동정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가치관을 띠고 있었다. 유대의 구약시대에서는 독신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손의 불어나는 것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생각되어지는게 일반적이었고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드문 경우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독신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신약의 이스라엘의 풍습에까지 이어진다.




2)마태오 복음서


제자들이 예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렇다면 결혼하는 것이 이로울 게 없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은 누구나 이해하지는 못하고 오직 (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합니다. 사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그렇게 고자(鼓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에 의해서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하시오.”(마태 19,10-12)



이 말씀은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적인 독신 생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고자(鼓子)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타나고 있다. 현대 성서 주석가들은 고자에 대한 예수의 말씀이 어떤 특정인에 의하여 그들의 완전한 자유의지(自由意志)로 결혼을 포기하도록 권고 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바는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이 실제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의 실천도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면 앞의 구절은 고자들의 구차한 이유의 단순 나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가 할 수 없고 또 인간의 개화를 저해하는 어떤 것을 우리에게 권함은 그분의 본질상 불가능한 것이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고, 앞으로 올 천국의 선물이 그토록 그들을 사로잡아 열광으로 휘몰았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결혼생활로 되돌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루가 14,26 18,29). 그들은 또 재산에 마음을 팔 수도 없었고(마르8,34:마태19,21:루가9,23), 물질적 생활의 영위로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마르8,34: 마태16,26:루가9,23). 예수를 따른자들은 과연 결혼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었기에 이러한 뜻에서 그들은 참으로 「고자들」이라 부를 수 있다.4)


예수는 독신생활을 모든 이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셨고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다만 이와 같은 고자들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이 일에 찬사를 보내며 유태인 지배계급의 공격에 대하여 이를 옹호하실 뿐이다.


하늘 나라를 최상의 가치로 판단하고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를 본받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음을 복음서는 말해주고 있다. 




3)바오로 서간


“나는 여러분이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기를 바랍니다. 결혼을 안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난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에 들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그는 갈라져 있습니다. 또 결혼을 안한 여자와 처녀는 육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하게 있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에 들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고 딴 생각 없이 주님께 충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7, 32-35).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거룩하게 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관점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그분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고 스승이신 그분의 뜻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마음 속에 두지 않으며 혹시 그런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것은 주님의 비위를 맞춘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헌신하며 투신한다는 뜻이다. 이 헌신과 투신은 주님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전인적인 결단이다.5) 


가정을 가진 이상, 아무도 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이는 없다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의견이다. 사제가 독신을 지키는데 많은 힘을 낭비하고 있다는 의견은 결혼 생활을 너무 쉽게 보는데서 오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결혼 생활도 독신 생활 못지 않게 많은 어려움들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주님의 제자는 독신과 정결 생활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바칠 수 있으므로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주님께만 온전히 투신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회의 오랜 전통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6)


이런 정결을 지키는데 하느님의 은총을 구함은 물론이고 개인이 수덕(修德)적인 삶이 요구됨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독신은 사제로 하여금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게 하고 또 그 봉헌을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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