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독신에 대한 신학적 고찰
1)그리스도론적 독신
예수는 그의 독신 생활로 교회와 결연(結緣)함으로써 교회를 그의 신부(新婦)로 맞아 들이셨다(에페 5,32).
독신의 근거는 성자 강생(Incarnatio)의 의미를 생각하면 잘 알수 있듯이 그분의 독신 생활을 인성(人性)에서 출발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수는 인간이지만, 또한 신(神)이기에 독신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인간과 함께 생활하시기 때문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독신생활을 택하신 것이다. 독신의 근거와 목적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체험과 희망에서 나온 것이다.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육화로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중재자의 임무에 가장 알맞도록 일생을 독신 상태로 머물러 계셨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쳐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신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독신과 사제직의 밀접한 결합은 또한 중재자시요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품위와 임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2)
인간 예수는 성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 그토록 열중하였기에 자유로이 결혼생활을 포기한 분이다. 예수의 독신 생활은 그가 신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절대적 가치(천국)의 실현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유로운 인생설계이다. 즉 직접 독신을 체험하시고 모범을 보이심으로서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것이다.
사제들의 독신이 그리스도의 모범에서 근거한다면 독신은 그리스도의 신비요,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설명해 주는 복음과 하늘나라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독신 생활은 구세주의 부활의 신비에서 흘러 나오는 은총의 특별한 표현이다. 독신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랑의 징표이고 사랑의 자극제이며 세상에 있어서 영적 풍요성의 특수한 원천으로 언제나 매우 소중하게 여겨왔다.3)
2)교회론적 독신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를 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건설할 사명을 받음으로써 지상에 있어서 천국의 시작과 싹이 된 것이다. 교회는 서서히 자라면서 천국의 완성을 갈망하며, 영광 중에 그 나라의 왕과 결합되기를 회원하고 있다.4)
그리스도교적 독신 생활은 교회적 차원을 띤다. 천국을 위하여 봉사(奉仕)함이 곧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교회의 종교적 근본가치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사이고 그분에 의해 형성되고 그분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제는 독신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차별 없이 하느님의 모든 자녀에게 전해준다.5)
교회는 사제직에 임하고자 하는 이들이 독신의 선택을 은사로 알아듣고 이 의무를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준한다. 교회론적 독신의 사명은 하늘 나라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라는 교회의 두 가지 요소와 같다. 즉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함이 곧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6)
사제는 독신이란 새롭고 고상한 이름으로 그리스도께 봉헌되었으므로 실생활과 대인관계(對人關係)에 있어서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한 애덕을 항구히 실천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과 최선의 준비를 갖춘 것이 분명하다. 이 사랑으로 사제는 모든 이를 위하여 보다 폭 넓게, 보다 결정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고 보다 효과적으로 성무를 집행할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파견을 받아 세상을 활동과 사랑의 무대로 삼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의당 갚아야 할 빛을 완전히 갚을 수 있을 것이다.7)
하느님과 인간에게 동시에 봉사하는 일은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비로소 가장 힘있는 표현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연결된 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위하여 봉사하는 이들 가운데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선택하는 이들이 허다하다.8)
교회의 사명은 이러한 독신생활의 이상과 가장 흡사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교회는 독신이라는 생활양식을 법적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생활양식을 선택한 자가 이를 외적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그렇다고 해서 은사(恩賜)로만 이해가 되는 독신생활을 교계(敎階)가 아무에게나 강제할 수는 없다. 만일 교회가 이러한 권리가 있다면 독신의 의무는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개인적 인간 권리를 침해하는 악표양이 될 것이다. 교회는 다만 교직에 임하고자 하는 이들이 독신생활을 은사로 알아듣고 이 의무를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준(認准)할 뿐이다.
3)종말론적 독신
신학이 종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종말론적 논거로 독신생활의 동기를 뒷받침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hic et nunc) 체험하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는 가장 내적이고 깊은 미래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세에 있어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머무는 사실을 천국에서는 결혼이 없다는 예수님 말씀(마태22,30)의 선참(先參)으로 알아들어서는 안된다. 천국의 독신생활에 앞서 무엇보다도 은총이 바로 종말의 천국에서 누릴 생명의 선참이며, 이러한 생명의 선참에는 현세에 결혼생활을 하는 이들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 독신생활을 영위하는 이들만이, 천국에서 아무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슴에 해당한다고 무의식중에 왜곡하고 있기 쉬운 것이다.9)
실질적 인간가치(혼인)의 포기가 결코 그 자체로 보아 종말론적 완성의 선참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으며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결정적이며 종말론적인 가치의 우선권은 은총의 초월성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원하는 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은총의 선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분명히 말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상을 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가 18, 29-30)라고 말씀하셨다. 사제는 믿음과 사랑을 통해 시간 속에 끊임없이 다아오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미리 살고 있다. 축성, 봉헌된 독신생활은 종말론적 희망의 표지가 되며,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예수님과 하나되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살게 될 미래의 실재를 보여주는 예언자적 표지가 되는 것이다.
즉 독신 생활은 천상 보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 22장 30절에서 부활의 때인 종말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신다.
천국을 위한 완전한 정결은 참으로 고귀한 천상 선물이며 새 세상이 올 때에 있을 마지막 시기가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음을 알려 주고 후일에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 가운데서 빛날 천국의 최상 보화를 천국의 완성을 앞서서 확인해 주는 천상보화의 독특한 상징이라 하겠다.10)
사제의 독신은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이미 이 세상에서 미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한다. 하느님 안에서 갖는 믿음과 희망의 표명이다. 축성되고 봉헌되는 독신 생활은,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예수와 하나 되어 성부에게 영광을 드리며 살게 될 미래의 실재를 보여 주는, 예언자적 표지가 된다.11)
사제의 독신 생활은 사제직의 종말론적 성격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사제로 하여금 부활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에 온전히 몰두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