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 구약 사제직의 세 계급
2. 2. 1. 대사제
넓은 의미에서 대사제는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잘의 자손으로으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신정체제로서의 대사제직은 다윗이 사독을 대사제직에 임명했다는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다 공동체는 그 이전의 왕정 체제에서 신정 체제로 전환된다. 이때부터 대사제는 그 이전 왕의 권위를 모두 갖게 된다. 그 예로 BC 520년 경에 이르러서는 대사제 여호수아와 다윗 왕조의 즈루빠벨이 동등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게 된다.(하깨 1, 1. 12. 14). 그러다가 다윗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되면서 대사제가 政敎 모든 면에서 유다 국가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어 최고의 위치로 부상하였다. BC 2세기에는 대사제가 제사장, 서기관, 원로들로 이루어긴 게루시아(gerusia:원로원, 산헤드린의 초기 형태)를 관장하면서 왕이 없던 시대에 첫째가는 대변자로서 유대 민족을 대표했다.1)
대사제가 가진 특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년에 단 하루, 오직 그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물의 피를 뿌려 자신과 자기 가문과 모든 백성들의 죄사함을 받았다(레위 16, 1-25 참조). 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현존 앞에 나서서 특수한 하느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사제는 또, 언제라도 제물 봉헌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성전에 봉헌된 성물들을 사제들에게 분배할 때도 제일 먼저 선택할 권한이 있었다.2)
이러한 특권을 가지는 만큼 대사제는 일반 사제들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순수성과 정결이 요구되었다. 성결법전에 의하면 대사제는 비록 자기 부모가 죽었다해도 그 시신에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되었고,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인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등의 행동도 해서는 아니 되었다. 또한 대사제직은 세습제였기 때문에 자신의 후손을 흠없는 자들로 보전하기 위해, 그는 일반 사제들과 달리 과부와 결혼할 수도 없었고, 자기 백성들 중의 오직 12-12. 5세의 한 처녀한고만 결혼할 수 있었다(레위 21, 10-15). 그러기에 같은 원리로, 혹시 대사제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죄의 값은 더 가혹하게 처리되었다(레위 4, 3-12).3)
대사제직의 제의적 성격을 특징짓는 것은 ― 우리가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대사제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 이 대사제의 죽음이 속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대사제가 죽으면, 도피성 등에 피신해있던 살인자들은 바로 그날 죄와 벌의 무게를 벗고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민수 35, 25). 이러한 대사제직의 제의적인 성격, 즉 ‘영원한 거룩함’ 때문에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유다 공동체에서 절대적인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고, 또 그에게만 허용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아울러 그에게만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했었다.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