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론­-교회의 사제 직무에 관한 올바른 이해

 

III. 결 론­ 교회의 사제 직무에 관한 올바른 이해




교회는 자신의 사제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앞에서 구약시대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좁게는 ‘사제는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넓게는 ‘사제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시도해 보았다. 구약의 사제직은 시나이 계약을 통해 운명 공동체로 맺어진 이스라엘과 야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중개자의 역할로 정의된다.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기름발리워진 사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그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게 지도했고, 그 말씀을 문서나 구전으로 보존, 전수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또한 희생제의를 통해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항상 현존해 계신다는 믿음을 백성들에게 심어주었다.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위해 사제 자신들부터 정결례를 엄격히 지켰었다. 그리고 대사제의 죽음이 속죄의 힘을 지녔었고, 전 백성의 죄를 떠맡아 사제가 대표자로서 속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고, 그러기에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심판 받는날 하느님 자신이 완전한 사제직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메시아적 희망과 함께 중요한 믿음으로 간직했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적 의미에서 볼 때 사제 계급에 속하지도 않았고 또 사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그 의미를 숙고한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구약의 사제직을 완성하는 대사제로 지칭한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독특한 방법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그 완전한 사제직을 실현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성사를 세우시고 집전하셨으며, 충실과 불충실의 거듭된 역사에 불과했던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당신 스스로 제관이 되시고 당신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바치신 그 빠스카의 제사로써,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완전한 충실성을 통해 구약의 계약을 완성하셨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진 속죄의 역할-곧,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사제적 역할-을 완성하셨다고 했다(히브 10, 2). 그리고 그 제사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다(히브 10, 10). 그분은 당신의 인성(人性)을 통하여 우리의 인성 또한 거룩하게 하셔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그 신성에, 그 위격적 사랑의 관계에 일치시켜 주시는 분이다. 바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고대해오던, 완전한 거룩함을 소유한 사제적 이상이 결국 하느님 자신에게서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구약을 완성하는 차원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큰 개방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분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이를 구원으로 부르셨고, 세상 모든이가 당신의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의도하셨다. 사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일회적 빠스카 사건으로 더 이상 완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제직은 완성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위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이 구원 사업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하기 위하여 가시적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로 하여금 당신 사제직에로의 참여를 계속하도록 하셨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의 사제적 백성으로 불린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사제로서 생각하고 행위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는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자신을 제물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과 봉사와 사랑의 삶을 통해 자신과 주위의 모든 이와 모든 사물을 거룩하게 할 의무를 지니는 사제가 된다. 이를 ‘공통 사제직’이라고 한다. 아울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세워지고, 신품 성사의 효과를 통해, 승계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특정인들의 사제직 또한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직무 사제직은 그리스도로부터 선택받고 축성받은 사도들에게서, 또 그 사도들로부터 안수받고 축성된 그 후계자들에게서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수된 전통이다. 세례와 견진을 통해 공통 사제직을 실천하는 신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성소를 받고 신품성사에로 불리워지고, 그 축성과 인호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되고, 미사 성제 안에서 그리스도의 빠스카 사건을 현재화하게 된다. 서품을 통해 이 직무를 과업으로 삼고 평생을 바치는 사제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고 그 은총을 전달하며,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공통 사제적 임무를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올바로 실천할 수 있게 그들을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 사명 등을 지닌다.


앞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강생, 그 자체가 인간을 위한 봉사(diakonia)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그리고 죽기까지 인간을 위해 당신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내어놓으신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철저한 봉사였다. 거기에는 위-아래의 관계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도, 주인과 종의 관계도 아닌 오로지 ‘봉사하는 사제직’만이 존재한다. 사제는 특히 강론을 통해, 그리고 특정 설교나 강의나 교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말씀에의 봉사자이며, 성사 집전에 있어 봉사하며, 그래서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다. 트리엔트 시대 이후로 한동안 교회의 모습으로 잘못 고착되어 왔던 성직자 우월주의적 사고나,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받는 성직자의 像은 지양되어야 한다. 여기서 잠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다. “교회 안에는 그 첫 자리에 서품된 직무, 즉 신품성사에서 나오는 직무들이 있다. 실제로, 만민을 당신 제자로 삼으라는 분부(마태 28, 19 참조)와 더불어, 주 예수께서는 사제적 백성을 형성하고 다스리시기 위하여 사도들을 뽑아 세우셨다. 사도들은 새로운 계약의 백성을 이루는 근원이며 교계 제도의 기원이다. 주 예수께서 당신 백성의 목자들에게 계속하여 위탁하시는 사도적 사명은 진정한 봉사이다. 성서는 이를 두고 의미 심장하게도 ‘디아코니아’(diakonia), 즉 봉사 또는 직무라고 언급한다. 성직자들은 신품성사를 통하여 사도들의 끊임없는 계승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그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in persona Christi Capitis) 행동하여 교회에 봉사하고, 복음과 성사들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교회를 모아 들일 수 있는 신성한 권위와 권한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다. 서품된 직무들은, 이 직무를 받는 사람들에게 있어 은총일 뿐 아니라, 또한 교회 전체를 위한 은총이다. 이 직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참여를 표현하고 또 실현한다. 이것은, 그 정도만이 본질에 있어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참여와는 다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상기하는 바와 같이, 직무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모든 신자들의 왕다운 사제직을 그 목적으로 삼고 또 이를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 안에서 친교를 보장하고 증진시키자면, 특별히 직무의 다양성과 보완성이 있는 그러한 곳에서, 사목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직무가 근본적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를 위하여(히브 5, 1 참조)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교회의 사명에 대한 자신들의 참여를 위하여 직무 사제직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1) 계속해서 교황은 올바른 봉사자가 되기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목 계획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부득이한 긴급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가상의 ‘긴급한 상황’이나 ‘보충역의 필요성’을 너무 쉽게 인정하는 남용을 삼가야 한다. 특히 직무 사제직과 공통 사제직의 본질적인 차이 그리고 신품성사에서 나오는 직무들과 세례와 견진성사에서 유래되는 직무들 사이의 차이를 충실하게 존중하여야 한다.”2) 이 말은 자신의 신품권에서 나오는 신적인 품위를 내세우고 권위를 강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제 자신의 고유한 임무, 곧 말씀의 선포를 개인적 이유 때문에 신자들에게 떠 맡기지 말것이며 충실히 그 말씀에의 봉사에 임하고, 아울러 충실히 성사에 봉사하고, 충실히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진다.


교회가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참여이다. 참 사제로서의 교회의 모습, 세상 모든이를 성화시키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교회의 이 사제적 사명은 어느 특정한 성직자 몇몇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자신을, 이웃을, 이 세상을 성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다시말해 자신의 사제적 사명에 충실할 때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며 이들이 그리스도의 참 사제로서 생활하고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직무 사제직은 여기에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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