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사회는 평신도를 유혹한다!-정보화사회 속의 평신도(뉴 미디어 시대의 종교)

 

3. 뉴 미디어 시대의 종교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말들을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상당 부분은 매스 미디어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텔레 커뮤니케이션이나 미디어와 관련된 기술의 첨예화 현상도 포함하고 있다. 첨단 기술은 통신 위성, 케이블 텔레비전, 광섬유, 비디오, 콤팩트 디스크, 전자화된 화상(畵像) 기술과 기타 컴퓨터나 디지털 기술을 말한다”(「새로운 시대」, 2항). 뉴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탈대중화라고 한다(가톨릭매스콤위원회 1992년도 세계홍보주일 심포지엄 자료집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교회 커뮤니케이션의 모색」 9면에 나오는 박영상 교수의 질문 참조). 즉 불특정 다수가 최대 공약수적인 메시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메시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탈획일화가 있는데, 이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개개인이 존중되고 따라서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이 인정되는 것을 뜻한다(정대철, 앞의 글, 32-33면 참조). 앞으로는 점점 더 각자 구미에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즐기고 가공하고 창조활동에 이용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수집한 정보의 효용성과 가치 등급에 따라 정보를 소유한 사람의 권력이 정해질 수 있고, 뉴 미디어에 의한 개인화가 진행되어 극단적 형태를 취할 수 있겠다.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의 축적, 처리, 전달 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정보의 가치가 산업사회에서 물질이나 에너지 못지않게 중요해진다. 앨빈 토플러는 개인적, 사회적 영역에서 권력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보’라고 하여,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할 것을 예견하였다(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한국경제신문사, 1990, 32면 참조). 더구나 정보화는 일개 국가, 집단, 개인이 거역할 수 없다(앨빈 토플러, 「전쟁과 반전쟁」, 한국경제신문사, 1994, 42면).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2000년대에 우리 나라는 더욱 정보화할 것이다. 미디어가 계속 발전하는 한, 정보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교회의 희망대로 매스 미디어가 인류의 일치와 발전을 위해 기여하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이미 교회도 인식하고 있듯이 매스 미디어의 부정적인 역할은 매우 심각하다.


뉴 미디어 시대에 사는 신앙인들은 커다란 유혹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유혹도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선택의 기회에서 온다. 사실 가톨릭교회에서 정보에 대한 권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교황 비오 12세에 와서이다. 레오 13세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교회가 공격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정보에 대한 권리와 출판 기관의 자유가 개인과 사회의 존엄성을 위한 불가결의 자연법이라고 하면서, 비오 11세까지의 전임자들의 가르침을 전폭적으로 수정한다. “그의 전임자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정열적으로 반대 투쟁을 하였거나(특히 그레고리오 16세와 비오 9세의 경우), 그렇지 않으면 단지 어쩔 수 없이 참아내었던 것이다(특히 레오 13세와 비오 11세)”(기소도이센 저, 박일영 역, 「가톨릭 사회론 해설서」 제12권(언론 분야), 1991, 17; 평화방송, 「가톨릭 언론 자료집」, 도서출판 평화방송·평화신문, 1994, 196면에서 재인용).


과거에 교회가 걱정했던 정보 자유와 권리의 오용은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된 오늘날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컴퓨터 통신 내용의 많은 부분이 음란 정보라는 사실은 문명의 이기일 수 있는 정보 통신망이 현실 생활에서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신앙인들의 눈과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악마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정보시대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신자들이 기존의 교회생활에 싫증을 느낄 수도 있다.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공간의 개념은 점점 약화되는데, 성당에 나가 미사 참례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무척 번거롭다는 유혹을 받을 수 있겠다. 또한 교회 정보나 관련 지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상당한 지식을 지니게 된 신자들이 중앙 집권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좀더 다양한 신앙 형태와 권력 분점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것이 긍정적 측면을 지니기도 하지만, 질문에 대한 교회의 답변이 맘에 차지 않을 때 교회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거에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보다는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겠다.


실제로 정보화가 앞선 북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외적으로 하나의 제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에 대항하여 소규모이고 덜 중앙집권적인 종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유다교가 주춤한 반면, 수백 개의 소교파들은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존 나이트비트, 「메가트랜드 2000」, 한국경제신문사, 1992, 317면; 박문수, “정보사회와 교회”, 「사목」 196호<1995.5>, 23면 참조). 미래사회에도 인간의 종교적 욕구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이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시대에는 개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어, 잘 조직된 종교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하고 발휘하게 해주는 종교  – 예를 들면, 불교 – 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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