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고찰-공통사제직과 직무사제직의 관계

 

4.2 공통사제직과 직무사제직의 관계



   현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사제직의 두 양상을 연관시키고자 하며, 성사 인호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참여 사이에 토마스가 설립한 연결고리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1) 그런데, 이 둘 사이의 연관성은 흔히 공통사제직이 어떻게 직무사제직에 관련되는가 하는 형식으로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공통사제직을 직무사제직에 끼워맞추는 방법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세례적 참여야말로 교회내의 모든 유형의 사제적 활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제적 특징에 관한 모든 형태와 표현은, 확고하게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례사제직2) 위에 세워진다. 따라서 견진사제직과 성품사제직은 이 세례사제직이라는 문맥에서, 그것을 토대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 내의 주된 사제적 실체는 모든 신앙인들의 공통사제직이며, 직무사제직은 이 기초적인 토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견진과 성품성사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세례의 참여를 더욱 전문화하고 기능화하는 것이다. 세례는 삼위일체의 내적인 생명에 참여하게 하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며, 견진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에 참여하게 하고, 성품은 육화한 그리스도의 현세의 사명에 참여케 한다. 세가지 성사가 모두 교회를 건설하는 것으로서 세례가 단연 기초가 되고, 견진과 성품은 하나의 교회를 상호 건설하는 것이다.3)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교회헌장 10항에 제시된 차이성과 상호관련성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차이성




  교회헌장은 “신도들의 공통 사제직과 직분상의 교계적 사제직은 정도의 차이로뿐 아니라 본질적 차이로 구별된다.”고 함으로써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4) 이 표현은 비오 12세의 전례에 관한 말씀에 기인한 것으로, 사제와 평신도는 그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전례에 대한 그들의 기여에 따라서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했다. 즉, 전례에서 그들은 서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사제가 직접 전례를 집행하지 않고 참여할 때는 사제로서가 아닌 평신도로서 참여하는 것이요, 평신도가 전례를 담당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일을 행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평신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5)


   그러나 이처럼 전례에서의 기능 차원에서만 두 사제직의 본질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좁은 해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첫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직무사제직을 너무 좁은 관점, 곧 예배 기능을 부당하게 강조하는 관점에서 다루는 것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만일 구약 전통으로부터 너무 문자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종교적으로 그 개념이 도입된다면, 직무 사제직의 온전한 중요성이 사제라는 단어에서 불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약의 사제직은 단순히 경배(미사성제와 성사)에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의 설교가 더 우선적이며 또한 권위있는 사목적 봉사에서도 수행된다. 그러므로 사제직은 예언적인 봉사라는 것만큼의 개념으로써 완전해져야 한다.6) 그리고, 둘째, 공통사제직이 단지 은유적인 의미만 지니거나 직무사제직에 부수적으로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실질적인 사제직이기 때문이다.7) 사실 공의회는 공통 사제직의 실재성을 옹호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보여준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용어 자체의 표현을 둘러싼 숙고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통사제직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자격으로 그의 사제직의 기본적 성격에 참여하는데 비해, 직무사제직은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정도의 차이에 따른 구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질적 차이로도 구별된다는 진술의 의미는 ‘각각 독특한 방법으로 참여한다’는 표현 그대로, 사제직의 수행 양식(modus)에 따라 구별된다는 것이다.8) 따라서 “보편사제직은 전례에 참여하고 성사를 배령하고 애덕의 제사를 드리는 식으로 이행하는 증험적(證驗的, testimoniale) 사제직이고, 직무사제직은 그리스도의 대리자격으로 교회를 만들어가는 공직수행(公職修行, ministeriale)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양자의 형태가 다르다.”9)


   한편 그릴마이어(A.Grillmeier)에 의하면, 일반 사제와 특수사제가 동격의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위격 때문이다. 우선 동격관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느님 백성을 교회 안에서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하느님 백성, 공동체로서의 하느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직무사제의 과제도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 따라서 사제와 평신도는 각각 그들의 고유 임무 안에서 교회를 위한 본질적인 존재이다. 즉, 교회는 세속의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전세계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질적 구분이 강조하는 것은 교계적 본질이 아니라, 성사적 본질, 곧 전세계의 교회로서 교회 사명의 신비와 관련되어서이다.10)


   결국, 두 유형의 사제직은 대사제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라는 조명에서 올바르게 정의된다. 직무사제는 전체 그리스도의 백성 안에서 기능을 가지는데, 그리스도의 중개에 특별한 참여를 대표하므로 상승과 하강의 요소를 지닌다. 하강적 요소는 직무사제가, 가르치고 인도함으로써 사제적 백성을 형성하고 일치시킬 임무를 갖는다는 점이다. 가르칠 권위, 곧 말씀 선포의 임무가 첫 장소에서 언급된다는 것이 주목된다. 그리고 상승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십자가상 제사에서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듯이, 축성된 사제직도 그리스도인 백성 가운데서 백성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in persona christi) 성찬 제사를 축성할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직무 사제직의 특질과 본성은 위로부터 아래로, 그리고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특수하게 참여한다는 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11)


  


   (2) 상호관련성




  완전한 하느님 백성의 사제적 실체는 두 사제직의 협력으로부터 기인한다. 직무사제직의 권한이 백성으로부터 기인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궁극적으로 세례에 기초하며 전체로서 하느님 백성의 기능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공통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은 대립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는 개념이다. 하느님의 선물을 관리하고 부여하는 직무사제직은 결국 하느님 백성 전체에 봉사하는 것이며, 공통 사제직은 그 은총의 선물을 생활에 구현함으로써 직무 사제직의 존재 의의를 밝혀주기 때문이다. 직무사제직이 성품성사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지만, 그 성사 자체가 하느님 백성의 사제적 성격에서 유래하고, 또한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를 지향하기 때문에, 공통 사제직이 직무사제직의 근원이요 목적이다.12) 교회헌장은 전반적으로 직무사제직이 하느님 백성에의 봉사임을 강조하고 있다.13) 따라서 교회헌장은 두 사제직 사이의 본질적 차이보다 본질적 동일성과 기능적 구별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14)


   만일 두 사제직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무시한 채 어느 한 가지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신약의 사제직 본체는 그리스도 자신의 유일한 사제직뿐이다’는 대전제를 망각하는 것이다. 인간들 편에서 성사적 방법으로 빠스카 신비의 은총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현세의 모든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현세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15) 더욱이 “직무 사제직은 이 지상에서 ‘순례하는 백성’에게만 통용되는 것이고, 꺼지지 않는 빛의 나라에 도달할 때, 하늘의 영광 안에 완성된 후에는 없어질 성질의 것이다.”16)


   직무사제직과 공통사제직의 관계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라너(K.Rahner)에 따르면, 사제직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사제직이고, 그 안에서 교회의 전 구성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 공통 사제직이다. 그리고 궁극적 척도로 평가한다면 공통사제직이 직무사제직보다 더 높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권능이 이 은총의 표지를 직위적 효능으로써 교회 안에 세우는 권능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꽁가르(Y.Congar)는 직무사제직이 아래에서, 곧 공동체에서 기인하지 않고, 교회 위의 권한을 가진 교회의 주(主)에게서 오기 때문에, 그것은 교회를 위해, 교회 안에 있으




나, 교회의 것은 아니라고 한다.17) 수에넨스(K.Suenens)는, 사제와 평신도의 일치는 신비체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그 기능들이 다르지만 분리되지 않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묶어놓은 것을 여기서 인간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고 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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