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의 수행-전례

 

5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의 수행




5.1 전례




   교회헌장 11항은 하느님 백성이 사제직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열거되어있다. 여기서 성사와 덕행이 나란히 거론되는데, 이는 거룩한 생활의 대표적인 표현이 하느님을 예배하고 은총을 받는 전례요, 전례를 통해 빠스카 신비가 역사 안에서 거듭 재현되기 때문이다.1) 이 전례행위는 사적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성교회의 공식경배2)이며, 그 고유한 주체는 대사제요 중개자인 그리스도이다.3) 대표적인 전례행위인 미사에서 하느님 백성은 성체성사를 이루어 성부께 희생으로 바쳐 “십자가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4)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함으로써 더욱더 그 신비체가 되어간다.5) 이 때, 사제는 다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서 수행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로서 백성들 앞에 나서서 기도와 제물을 봉헌하며, 백성전체와 성찬 식탁 둘레에 모인 모든 이의 이름과 지향으로 이를 행하는 것이다.


   20세기초부터 시작된 현대 전례운동의 결실이며, 전례에 관한 미래의 발전을 총괄하는 최초의 전례신학 공식문헌인 회칙『Mediator Dei』는 미사에서 하느님 백성이 제사를 봉헌하는 형태를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외적인 이유들로서는 신자들은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여, 사제의 기도와 함께 자신의 기도를 번갈아 가며 바치고 있고, 또 때로는 제단의 집전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를 가져가고 있고, 또 사제와 그들을 위하여 천상 희생물을 바치도록 하기 위하여 봉헌금을 바쳐 봉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이유로서는 신자들은 사제의 손을 통해, 사제와 함께 제사를 봉헌하기 때문이다. ‘사제의 손을 통해서’는 사제가 모든 지체들의 이름으로 봉헌하고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위격을 이행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로써 전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합당하게 희생물을 봉헌하게 된다. 그리고, ‘사제와 함께’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찬미와 간구, 속죄와 감사의 정을 사제의 지향과 일치시켜, 같은 봉헌 안에서 사제의 외적 예절로,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그런 목적과 일치시키고 있다는 뜻이다.6)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봉헌의 충만한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제물로 봉헌하는 것이 필연적이며,7) “자기자신과 자신의 걱정, 고통, 재앙, 가련함, 그리고 요구들을 모두 구세주와 함께 봉헌해야”8) 한다.


   따라서 세례와 견진을 받은 모든 이의 다양한 참여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성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참으로 의미있게 실현된다. 공통 사제직은 성사를 받고 기도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드러나며, 특히,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절정인 성체의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신도들은 신적 희생을 하느님께 바치며, 자신을 또한 함께 봉헌하는 것”9)이다. 그래서 이 사제직은 “다만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함께 제헌하면서”10) “주의 만찬을 받아먹음으로써”11) 수행된다.12)


   그러나 한편, 1987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이 자주 피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유혹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평신도들이 교회의 봉사와 임무에 지나치게 강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전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분야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과 “신앙과 생활의 부당한 분리, 즉, 복음의 수용과 현세와 현시대의 다양한 상황에서 수행하는 활동과의 분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13) 이는 최근 교황청이 공통사제직의 직무사제직 협력에 관한 훈령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다. 평신도들은 ‘사목자와 협력하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이 아니며’14), 특히 ‘사제들이 없거나 부족한 예외적인 상황을 위해 마련된 해결책들을 일반적이며 통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빚지 않도록 해야 한다’15)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성체분배와 관련해 볼 때, 신학적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수도자의 성체분배보다 평신도의 성체분배가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수도자는 하느님을 위해서만 봉헌된 삶의 양식에로 불린 자이며 공동체에 대한 직무에로 불린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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