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평신도 개념의 변천
1.3.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초대 교회의 평신도들은 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공동 생활을 하였다.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4, 32-35). 그리고 일부 평신도들은 저술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교리의 합리성을 주장하였고, 외교인 지식층과 황제들에게 당시 그리스의 철학개념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영성 생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 중심의 신심생활을 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생활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 3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도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평신도들은 좀 더 종교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수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극기하였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였다. 하지만 일부 평신도들은 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단으로 단죄받기도 하였다. 3-4세기의 평신도들은 당시의 이단과 이론적 투쟁을 벌이면서 신학발전에도 기여하였다. 떼르뚤리아노, 치쁘리아노,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바실리오, 예로니모 등이 그들이다. 또한 교계1)에 있어서 주교나 부제를 선출2)하는 것도 평신도의 역할이었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하느님 백성이었던 교회 구성원이 성직자와 평신도로 엄격히 구분되었다. 평신도는 이제 더 이상 교회 내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성직자만이 교회요, 교회인이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평신도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종교 개혁으로 약해진 가톨릭 신앙의 힘을 복구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들은 사도직을 수행하고, 자선 사업을 벌였으며, 교육활동에 종사하였다.
19세기에 교회의 사목활동에 있어서 평신도와 성직자와의 조직적인 공동협조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에게 영향력있는 직책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였으므로 공동협조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가톨릭 운동(Catholic Action)’이란 평신도 조직이 생겨났고,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교황 비오 10세는 성직자들에게 보유되어 있었던 사도적 임무에 평신도의 참여를 권장하였고, 이러한 평신도 활동은 교회 구성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라고 주창하였다.3)
이렇듯 교회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평신도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청되었지만 아직도 그것은 성직자의 독점대상이었고, 평신도는 보조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