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평신도와 선교-한국 교회의 선교상황과 정책(선교 상황(상))

 

4.3.1 선교 상황


위에서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오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여 탄생하게 된 한국 교회는 해방 이후 지난 40여 년간 비약적인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1955년부터 1965년까지와 1980년부터 1989년까지의 기간에 가장 높은 신장세를 보였다.


1955년부터 1965까지 한국 사회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고, 이에 불안과 환멸감에 젖어든 많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정신적 위안을,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를 통한 서양의 원조를 바라고 신앙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1955년 말 215,554명이었던 신자 수가 1965년 말에는 669,348명으로 증가하여 211%의 교세신장률을 보인다.


한편, 1980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사회는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인한 부의 불공정 분배와 민주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신군부의 집권으로 국론 분열이 심화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깨어 있는 양심의 소리를 냈던 천주교에 입문함으로써 위안과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였다. 이 기간 중에 신자 수는 1,321,293명에서 2,750,607명으로 급신장하였다. 


현재 한국의 천주교회에는 총 15개 교구와 2,327명의 한국인 사제와 211명의 외국인 사제, 그리고 8669명의 수도자(남:1095명, 여:7574명)가 있다. 또한 1996년 12월 31일 현재, 신자 수는 총 3,562,766명으로 총인구 대비 7.8%의 복음화율을 나타내고 있다.1) 해방 직전인 1944년의 신자비율이 0.69%였던 것을 감안해볼 때2) 현재의 복음화 비율은 비약적인 성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해방 이후 40년간의 복음화 추세에서 두 가지 특기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한국 교회의 성장이 ‘그리스도의 신비’의 전파라는 순수한 의미 외에 정치․사회적 외풍을 많이 탔다는 것이다. 둘째, 평신도의 직접선교보다는 교회차원의 선교정책 혹은 행사들3) 그리고 특정 성직자들의 카리스마가 복음화를 위해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신도의 직접선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평신도의 직접선교의 역할이 미미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점은 첫째, 교회 차원의 정책적 선교만으로는 지속적인 저변 확대에 문제가 있다는 것. 둘째, 직접선교에서의 끈끈한 인간적 유대가 결여됨에 따라서 냉담자들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냉담자 및 행방불명자의 전체 신자수 대비율은 80년대 말의 22%에서 90년대에 들어서면 연평균 증가 절대수가 3만 명 선에서 4만 7천 명 선으로 갑자기 60%나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가 미미한 한국 교회의 복음화는 지속적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1982년도에 9.6%의 기록적인 상승률을 기록한 뒤에는 해마다 그 비율이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4) 하지만 복음화 비율이 하강한다고 해서 현 실정이 반드시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좋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사목회의에서 작성한 <사회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일반인들에게 선택하고 싶은 종교에 대해 물었을 때 천주교(31.87%)․불교(25.07%)․개신교(17%)의 순서대로 응답했으며, 특히 46.74%의 사람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 이것은 한국에서 천주교의 선교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며 평신도들의 선교의지와 알맞는 대책에 따라서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의 외적인 선교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내적인 상황, 즉 평신도들이 ‘선교 사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다음의 표는 신자들의 실천사항에 대해서 조사한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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