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론-하느님 나라(‘하느님 나라’에 대한 개관-사상적 배경)

 

1.2.2 사상적 배경


가. 하느님의 왕권,통치에 대한 사상


구약에서는 하느님과 관련된 의미로서는 ‘나라’라는 단어가 비교적 적게 나타나지만 “하느님의 나라”라는 사상의 근거가 되는 왕으로서의 하느님 이해는 구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1). 그러나 야훼, 하느님이 왕이시라는 사상이 구약에서 처음부터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은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때에도(출애 3,14) 왕이라는 아무런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정착 후에는 야훼와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런 상징적인 표현을 이용하였다. 야훼는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판관 8,23; 1사무 8,7). 야훼는 하늘과 지상에서 또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 안에서 영원히 통치하신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통치하신다(예레 10,7.10). 그러나 모든 민족들 중에서 특별히 “사제의 직책을 맡은 왕국,거룩한 백성”(출애 19,6)으로 이스라엘이 선택되었다. 그러므로 야훼의 통치는 이스라엘 안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2)


이런 ‘신의 왕권’은 고대 근동지방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관념이었다. 각 신의 통치권은 그 신을 숭배하는 민족의 영토와 그 민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기원 전 8세기, 야훼가 온 세계와 우주의 주인이시며 유일신이라는 ‘야훼이즘’을 정립한 예언자들3)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스라엘의 영토를 떠나면 하느님께 예배 드릴 수도 없고 하느님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기원 전 8세기 이후 예언자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통치를 다른 민족신들의 통치와 동일시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하느님 야훼의 통치는 宇宙的이기에 어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4)


한편, 바빌론 유배 이후에는 하느님이 영원한 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은 그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권이 이 세상에 실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있을 하느님의 완전한 주권의 실현을 고대하는 그래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희망하는 종말론적 희망과 기대가 생겨났으며  이는 ‘주님의 날’에 대한 기다림으로 표현된다. 이 날은 하느님께서 현재나 혹은 가까운 미래를 초월하여 그분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확립시킬 목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실 날이다.5)




나. 왕정체험과 메시아 대망 사상


고대 동방에서 왕정제는 성별된 제도였으며 신적 영역에 속하는 거룩한 제도였다. 또한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는 상이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왕은 신적 영역에 속하지도 않고 여느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계약과 법에 예속되어 있었다.6)  


이스라엘은 팔레스틴 족들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의식 때문에 왕정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으며 다윗에 이르러 왕정제도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7) 그러나 처음부터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에서 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1사무 8,6과 10,17 이하에 보면 사울 왕정을 神政의 거부로 보는 반왕정적 태도가 보여진다. 그러나 예언자 나단의 예언은 다윗 왕조를 하느님의 약속으로 미래를 보장받은 영원한 왕국의 受託者가 되게 하였다(2사무 7,5-16; 23,1-7). 그래서 백성들의 희망은 다윗왕국과 연결된다.8)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정 체험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하느님께 충실하여 예언자들과 역사가들로부터 훌륭한 왕으로서 칭찬을 받은 왕들이 있는가 하면9) 반대로 하느님께 불충하여 비난을 받고 벌을 받은 것으로 소개되는 왕들도 상당수 소개되고 있다.10) 예언자들은 주변국가들의 왕권과 거리를 두어야함(차별화)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왕들의 직권 남용을  고발하고 그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형벌로서의 재앙들을 이야기하였다.11)  이처럼 이상적인 왕의 기준은 신명기적 기준으로, 하느님께 충실한 왕인지 여부였다. 그러나 기원전 587년 남부 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정이 비참한 파국을 맞게되고 백성들은 유배생활에 들어가게 되자 다윗왕조의 후손으로 이상적인 왕이될 메시아12)를 기다리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 예언자들에 의해 이스라엘 안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이사 7; 9,1-6; 이사 11,1-9; 미가 5,1-6 ).13)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완전한 이상적 왕의 모습을 찾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런 기대(이상적 왕에 대한 기대)를 채워줄 미래의 왕,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었다. 애시당초 하느님께 희망을 걸었던 이스라엘은 지상에 출현하게 될 역사적 인물 메시아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전환하였다. 주님으로 부터 기름을 발리운 자가 종말론적 시대에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리라는 기대로 변하였다”.14)


발터 카스퍼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지상에서는 일찍이 실현되어 본 적이 없는 어떤 의로운 지배자를 그리워 하면서, 이 이상이 언젠가는 실현되리라고 기대해 마지않았던 당대 유대인들의 희망을 총괄하는 개념이 바로 하느님 나라 내지 하느님의 다스리심이라는 개념이다.”15) 결국 “하느님 나라”에 대한 사상은 구약에서, 역사와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왕권,다스리심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며 이 하느님의 왕권에 대한 이해는 역사를 거치면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게되고 아울러 메시아라는 종말론적 인물과 결부되어 이스라엘의 근원적 희망, 즉 하느님께서 미구에 결정적으로 당신의 통치권을 확립하시리라는 희망으로 자리잡아 갔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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