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론-하느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교회가 지닌 자기이해의 역사 안에서-교회관의 변천)


 

3.1.1 교회관의 변천1)


성부의 원대한 구원 계획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그 기초를 두고 부활과 성신의 강림으로 이 세상에 그 모습을 갓 드러낸 믿는 이들의 공동체, ‘교회’는 처음에 보잘것 없는 한 무리로 출발하지만 그들 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생한 부활 체험과 성령의 작용이었다. 여기에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가장 절실했던 믿음인 하느님 나라가 곧 도래하리라는  ‘대기임박 사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교회는 형식이나 제도로 굳어진 일정한 형태의 것이라기 보다는 성령의 일하심에 자신들을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구체적 삶이었다. 다시말해서 교회는 고정되고 정체된 제도(institution)나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이 표방하는 교회관은 ‘성령론적 교회관’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들에게 각자 고유한 모습으로 고유한 양만큼 선사된 성령의 은사가 존중되는 교회관이다”2) 이런 교회의 모습은 사도 바오로가 건설한 공동체에서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교회관에서도 단점이 있었다. 아무리 성령이 일하시는 공동체라 하더라도 한계성이 분명한 인간들의 모임이었기에 거기에서 파생되는 실천적 갈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갈등들의 원인은 ㉠ 하느님 나라 도래의 지연 ㉡ 사도들의 죽음 후 그 대체 권위의 약화 ㉢ 공동체의 크기가 커지면서 생기기 시작하는 교회 안의 분열(1고린 3장 참조) 등이다.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던 현상은 교회가 institutio화 되는 것이었다. 외적으로는 공동체의 수적 팽창과 지역적 확장 그리고 내적으로는 사도들의 권위에 대한 대체 권위의 약화로 말미암은 공동체 내의 권위에 대한 도전, 또한 곧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하느님 나라 도래의 지연 등은 교회로 하여금 법적이고 제도적인 성향으로 발전하게끔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4세기 초에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박해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고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된 사건이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그 당시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리스도교는 불법적인 종교에서 공식적인 종교이자 제국의 신성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때 교회는 특수한 주변 집단으로 부터 보편적인 교회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상당한 문화적 정치적 노정을 걷게 되었다. — 서기 312년까지만 해도 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교회가 제국의 제도들 곧 법률, 교구 조직, 관료적 집중화, 지위, 직함 등을 물려 받게 되었다”3)


물론 INSTITUTIO화(제도화,조직화)라는 것은 역사성을 지닌 인간들의 모임이라면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제도적 측면이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교회의 외적인 측면만이 강조 되고 교회가 교계 제도와 동일시 되어 근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교회의 모습에서는 생동적인 ‘영의 작용’이라는 측면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일방의 그리스도 중심적 교회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모든 조직과 제도, 직무들이 하나의 도구로써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또한 이런 요소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파악되는 교회관이다. 이제 교회의 권위는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일시 되어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이 되었고 “성직자 중심의 교회, 성직주의와 패권 그리고 영광주의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말이었다.지상 교회는 천상 교회의 실현이었다.”4) 


이러한 흐름이 중세 이래로 계속 되었으며 오히려 더 심화되어 제국과도 같은 교회가 되어버렸다.5) 아울러 근대에 이르러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소집되었던 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과거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교회는 ‘완전한 사회'(Societas perpecta)이며 세상에 대해 그르칠 수 없는 절대권을 소유한다고 밝혔다.6)


교회의 역사 안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은 교회의 원전인 성서에 바탕을 두고 구세사적 관점에서 교회를 삼위일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데서 잘 드러난다”7) 공의회는 잊혀졌던 교회 안의 성령 중심적 교회 이해의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교회의 직무를 과거 처럼 권위주의적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고 성령의 은사(charisma)요 봉사적 차원의 어떤 것으로 이해했다. 아울러 공의회는 성령론적 교회관에 입각한 많은 움직임들의 모티브를 제공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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