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론

 

결  론




예수의 설교와 공생활의 중심도 하느님 나라요 그 테두리도 하느님의 다스리심이었다. 하느님의 다스리심이야 말로 ‘예수의 본연의 일’이었다. 예수는 일체의 구원기대를 하느님 나라에의 참여라는 단 하나의 기대로 집약하고 있는데, 하느님 나라는 구원의 총괄 개념이며 하느님 나라의 구원은 인간에 대한 모든 악의 세력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종말론적 긴장의 실재이기도 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을 선취하여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구원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에 구원의 보편적 성사라고 이야기 한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 은총, 구원을 가시화하여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기에 ‘성사로서의 교회’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사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게끔 드러내주는 표지이고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구원의 성사이고 하느님 나라가 구원의 총괄 개념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가견적 현현(可見的 顯現)이며,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철저히 생활에 옮김으로써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주는 특별한 표지이자 그 나라의 도구요 성사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성사’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 자신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는 위치에 있고 또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봉사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는가? – ‘하느님 나라’라는 목표에로 정향되어 있는 교회, 모든 업적주의와 권의주의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하느님 나라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비천한 종이기를 자청하는 교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뛰어드는 ‘자기포기의 투신’ 그리고 他에 대한 지배가 아닌 ‘헌신적 사랑의 봉사와 섬김’ 그리고 모든이가 소외됨 없이 받아들여지는 ‘수용성(개방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형제애적 사랑’이 실천적 삶으로 ‘육화’되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 나라는 드러난다.


끝으로, 이 시대 그리고 이 땅의 교회는 과연 제2의 하느님 나라로서, 하느님 나라의 성사 역할을 얼마만큼이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또 이 시대적 상황 안에서 그 역할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들을 모색하는 일은 남겨진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이다. 




24.83.36.166 류해룡: 가난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찰에 대해서 잘 읽어 보았습니다. [11/07-02:12]
24.83.36.166 류해룡: 가난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찰을 읽어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제 자신에게 가난에 대한 성서적 근거와 그리스
도론적 입장에서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아쉽다면은 참고문헌을 좀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저의 이메일로 좀 보내줄수는 없는지요.. [11/07-02:16]

이 글은 카테고리: theology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