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교회, 성자와 교회

 

성부와 교회




        교회가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의 신비스러운 표지라고 생각하면, 그 기원이 단순하게 예수의 설교나 성령의 강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교회헌장 1장 2항은 교회의 기원을 천주 성삼의 심오한 섭리에서부터 풀어 나간다. 하느님의 창조 위업의 목적이 당신의 무한하신 행복을 나누어주시는데 있었으므로 하느님의 사랑만이 창조의 동기가 되었고 그 지혜와 전능이 창조의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 남용으로 범죄 하여 하느님의 이 선물에서 스스로 탈락하였어도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다.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도 창조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범죄 때문에 부득이 성자를 보내신 것이 아니고, 인간들 사이에 더욱 철저히 현존하시려고 당신의 본성적 지혜이신 성자를 파견하셨으니 결국 창조 목적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은 더욱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며, 당신 아들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시어 인간성을 순수 창조의 상태보다 더 높이신 것이다. 성부의 계획은 인간 역사 안에 구현되기 시작하였다.




        만물이 그렇듯이 하느님의 창조 계획 속에 있는 공동체 역시 기나긴 구원역사의 과정 속에서만 성장한다. 이 사실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설명하기를, 구원은 공동체로써 이루어지며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과 당신의 계획을 드러내시며 그들을 서서히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서서히 교육하시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새롭고도 완전한 계획과 혈육을 취하신 하느님의 말씀 자신을 통하여 전해질 더 완전한 계시의 준비요 표상이었던 것이다”(교회헌장 9항).




        구약의 백성은 신약의 백성인 교회의 준비단계였다. 구약시대를 통하여 유일신 사상이 확립되었고, 하느님과 그의 간택된 백성사이의 특별한 맹약관계가 분명해졌으며, 메시아 사상이 보급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교회설립도 메시아에 대한 기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으니,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보고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요한 6, 14)라고 하면서 그들의 메시아 기대가 현실화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신자들은 오랫동안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단순한 결론에 만족하였다. 그런 결론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부족한 말이다. 교회의 가시적인 면은 교회의 일부에 불과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으로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안에 그 뿌리가 있고, 기나긴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싹터왔기 때문에, 구약의 단계를 무시하거나 과소 평가하고 신약에서만 교회를 논할 수는 없다. 바오로는 이교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올리브 나무에 접붙인 가지라 하고, 이스라엘을 올리브의 본 가지라고 비유하였다(로마 11, 17-24). 그래서 교회헌장은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을 통하여 기묘하게 준비되었다”(2항)고 말한다.






2. 성자와 교회




성부의 구원계획의 실현은 성자의 구속적 육화를 통해서 절정에 이른다. 교회헌장 3항은 성자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성자께서 세상에 강생하신 것은 성부의 파견에 의하여 성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고, 그 성부의 뜻은 모든 것을 성자 안에 새롭게 하시는 것이었다(교회헌장 3항, 요한 17장 참조). 그래서 성자는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취하시어 이 세상에 오셨고(요한 1, 14) 성부께서 간택하시어 성자께서 맡기신 사람들에게 성부의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12, 50).


그리스도는 공생활 초기부터 오랫동안 기다리던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의 출현으로 지상에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 마태 4, 17)




        그리스도는 직접적인 설교로써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과 업적으로써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가 행한 수많은 기적들도 목적은 인간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보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의 자비가 역사하고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의 설교와 기적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고 준비되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확고하게 지상에 실현되었다. 예수는 야훼의 수난받는 종으로서 당신의 거룩한 피로서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 화해를 이룩하셨다(로마 5, 10). 최후만찬 석상에서 “나는 과월절 음식의 본 뜻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성취되기까지는 이 과월절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루가 22, 16), “이제부터 하느님 나라가 올 때까지는 포도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루가 22, 18)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빠스카의 뜻이 실현된 신약의 교회를 의미한다. 이렇게 구약의 빠스카 축제의 뜻은 종결되고 신약의 빠스카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구세 사건이 구세사의 결정적 단계를 넘기게 한 것이다.




        빠스카의 신비로 탄생한 교회의 기원을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을 때 아담에게서 일어났던 일을 재현, 아니 완성하셨다. 즉 아담이 잠들은 사이에 그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듯이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에 그 옆구리는 창으로 열리고, 거기서 성사(피)가 흘러나와 그 성사로써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하와가 잠들어 있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처럼, 교회는 죽은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왔다.” 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한 번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지고, 성사 특히 세례와 성체 안에서 재현된다.




        이제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써 탄생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통하여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구원과업의 성사적 실현인 성체성사는 계속해서 교회의 원리와 기초가 되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형성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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