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이해지평 안에서의 은총과 자유-전통적 견해의 평가(성서적 증언과 Augusti)

 

4. 오늘날의 이해지평 안에서의 은총과 자유


4.1  전통적 견해의 평가


4.1.1  성서적 증언과 Augustinus적 전통


성서적 증언과 Augustinus적 전통 사이에 핵심적 차이점은 은총에 관한 성서적 개념이 내용이나 형상(외양)적으로 결국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총체적인 구원행위’를 지칭하는 총체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전통적 견해에서 견지하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로의 불리움’ 그리고 특별한 모양으로 관련 지워지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측면은 성서적 증언 안에서는 단지 가끔 은총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 첨가되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계약과 같은 주제가 언급될 때 또 바오로에 있어서도 실제로 의화(義化)와 거의 동일한 말로 사용되는 은총이라는 말, 또 그렇게 바오로가 의화란 말과 은총이란 말과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보다 더 강조해서 죄의 극복을 첨예화하는 데, 바오로에 있어 은총이란 말이 전통적인 입장에서 주장하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만 주장할 수 없다. 이 모든 성서적 전통 이후의 발전들을 예시하는 특별한 것들은 이미 앞서 언급한 바 있던 ‘개인주의화 추세’라는 Context 안에서 발생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은총의 개인주의적 이해 – 신앙은 개인의 선택이다 – 의 핵심에는 미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바오로에 있어서 ‘예정(豫定)과 자유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했고 오히려 우리가 공부해야할 분량만 늘어난 셈이다.  바오로는 은총의 절대적 우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이 문제 해결로 여겼고, 이것은 또 인간 편에서 최대의 비하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을 완전한 자유 안에서 인간을 은총의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고, 수치의 그릇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로마 9,14-29 → 이러한 맥락 하에서 넓게 바라보면 인간의 쓸모 없음에 대한 반발로서 후에 르네상스의 재창조, 재발견에 연관되어진다.)


이에 비해 Augustinus 전통에서의 은총 개념은 아주 세분화되고 전문화된다. 이는 성서적 은총에 나타나는 여러 다른 개념들이 더 이상 진지하게 숙고되지 않았거나 더 나아가서 그것들이 틀리게 인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로 Augustinus에 있어서 은총개념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것은 오히려 당시 생겨난 논쟁의 상황이 은총을 자유와 은총의 관계를 통해 정의하도록 시대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Augustinus에게 있어서 은총은 하느님의 탁월한 사랑에서 온다. 이 사랑은 인간 자신 스스로 자신을 노예로 만든 인간의 의지를 위해서는 ‘내적 도움’이다. 그 내적 도움으로 인간은 다시 하느님에게로 회귀할 수 있으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Augustinus적 전통 중에서 그래도 성서적 증언과 가장 가까운 유사점을 지니는 것은 은총과 사랑(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을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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