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

 

제 4장: 신약성서의 은총 이해




        신약성서도 은총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향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 하느님은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를 통하여 예수를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성자로 선언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파견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순종과 사랑 안에서 그 실현을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약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를 통하여 구약의 계약사상을 첨예화시킨다. 하느님은 인간편으로부터 전제조건 없이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모든 과실을 용서하고 당신과 긴밀한 공동체를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형성하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실적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조건없는 자비다.


        바울로에게서도 은총이 율법과 대조된다. 율법은 인간이 자신의 실적을 이룩해야함을 의미한다. 은총이나 복음은 그와 반대이다. 예수는 어린이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죄인들인 창녀와 세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즉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업적이나 실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은총과 반대되는 말이다. 죄는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든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을 상실하게 한다. 죄의 용서는 은총의 회복이다. 죄의 용서라는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내적 차원이다. 율법주의가 붕괴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형제 공동체가 추구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외적 차원이다. 사랑의 형제 공동체가 다가올 구원을 엿보게 한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그러한 자유의 은총이 단편적으로 지금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 즉 하느님 생명에의 참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증되고 선취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반응을 요구한다. 인간의 업적이 하느님 나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는 선물이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윤리적 의무, 실천적 의무가 요구된다.


        요한은 생명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 생명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아버지 하느님을 계시하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실존에 참여함으로써 성취되고 심화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은총의 새로운 생명은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동시에 우리를 이웃과 결합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삼위일체 하느님과 결합하게 하는 친교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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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은총 이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4장: 신약성서의 은총 이해


            신약성서도 은총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향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 하느님은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를 통하여 예수를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성자로 선언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파견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순종과 사랑 안에서 그 실현을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약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를 통하여 구약의 계약사상을 첨예화시킨다. 하느님은 인간편으로부터 전제조건 없이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모든 과실을 용서하고 당신과 긴밀한 공동체를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형성하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실적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조건없는 자비다.

            바울로에게서도 은총이 율법과 대조된다. 율법은 인간이 자신의 실적을 이룩해야함을 의미한다. 은총이나 복음은 그와 반대이다. 예수는 어린이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죄인들인 창녀와 세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즉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업적이나 실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은총과 반대되는 말이다. 죄는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든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을 상실하게 한다. 죄의 용서는 은총의 회복이다. 죄의 용서라는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내적 차원이다. 율법주의가 붕괴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형제 공동체가 추구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외적 차원이다. 사랑의 형제 공동체가 다가올 구원을 엿보게 한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그러한 자유의 은총이 단편적으로 지금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 즉 하느님 생명에의 참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증되고 선취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반응을 요구한다. 인간의 업적이 하느님 나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는 선물이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윤리적 의무, 실천적 의무가 요구된다.

            요한은 생명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 생명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아버지 하느님을 계시하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실존에 참여함으로써 성취되고 심화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은총의 새로운 생명은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동시에 우리를 이웃과 결합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삼위일체 하느님과 결합하게 하는 친교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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