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바울로: 은총과 죄(사도행전: 성령의 삶)

 

4.3.1. 사도행전: 성령의 삶


        


        사도행전에 이미 암시되고 있지만 회개는 하나의 은총이다. 리디아의 영세(사도 16, 11-16)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믿게된 사람들은 예외없이 주님께서 그렇게 하기로 작정된 사람들이다(13, 48). 베드로의 아나니아 고발(사도 5,3)에서 우리는 세례로 의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삶을 위해서도 진실이다. 예수의 성령은 사도 바울로로 하여금 비티니아 지방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서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신다(20, 22-23). 스테파노의 순교는 성령이 이끌어 주시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7, 54-60). 그와같이 사도행전은 성령이 교회의 탄생 이외에도 행사하고 있는 역할들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아직 애매한 점이 있다. 세례 안에 주어지는 은총은 아직 사도들의 안수로 내려지는 성령의 선물과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7, 17; 19, 6). 때때로 charis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호의라는 개념과 달리 단순히 호의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시간적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은총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다. 나중에 신학적 개념은 스테파노가 “은총과 힘의 충만함”이라고 부렀던 개념과 매우 접근한다. 어떻든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살았던 실제와 그들이 형성했던 방법은 두가지 차이점이 있다. 성 바울로에게 있어서 은총의 신학은 매우 정확한 형태를 지닌다. 그리고 은총의 개념 그 자체가 빛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그가 체험했던 하느님과의 만남 후, 사울은 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사도 9, 17). 그의 사도적 삶 전체가 그에게 주신 성령에 완전한 순명하는 삶이었다(13, 2-3; 16, 7-10). 비록 그러한 순명이 그를 죽을 위험에 직면하게 했지만(20, 22-23). 성령께 복종은 그에게 비할 수 없는 사도적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놀라운 일들을 이룩하는 힘을 주었다(16, 18; 19, 11-12; 20,7-12; 28, 3-4; 7-10). 방언의 은사(19, 6), 탈혼(2 코린 12, 1-4)의 능력도 주셨다. 결과적으로 그의 놀라운 겸손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2 코린 12, 5-10). 그의 순종은 그를 그의 개별적 체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그의 영적 삶에 대한 이론은 하룻밤 사이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2)에서 바울로가 베드로의 지지와 더불어 다른 사도들보다 한 걸음 앞서서 이방인들에 대한 보편적 구원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갈라디아서(2, 1-10)에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훗날 드러내는 사고의 발전의 한가지 징표라는 것이다. 우리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행한 그의 설교 안에서 신앙에 의한 의화라는 사고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도 13, 38). 이러한 담화들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의 바울로의 가르침과 친근한 루가에게서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을 수 있다. 종말론적 사건에 신경을 쓰고 있는 테살로니카서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1 테살5,16.25; 2 테살 1,11). 그들은 하느님의 무상적 자비의 덕택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로 해서 충실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했다(1 테살 1,4; 2 테살 2, 13-14). 아울러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은총을 상기해야 했다(2 테살 2,16; 1,12). 사도 바울로는 항상 그가 편지를 써 보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기를 기원하고 있다(1 테살 1,1; 2 테살 1,2). 은총이라는 단어는 어떻든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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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4.3.1. 사도행전: 성령의 삶

            

            사도행전에 이미 암시되고 있지만 회개는 하나의 은총이다. 리디아의 영세(사도 16, 11-16)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믿게된 사람들은 예외없이 주님께서 그렇게 하기로 작정된 사람들이다(13, 48). 베드로의 아나니아 고발(사도 5,3)에서 우리는 세례로 의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삶을 위해서도 진실이다. 예수의 성령은 사도 바울로로 하여금 비티니아 지방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서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신다(20, 22-23). 스테파노의 순교는 성령이 이끌어 주시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7, 54-60). 그와같이 사도행전은 성령이 교회의 탄생 이외에도 행사하고 있는 역할들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아직 애매한 점이 있다. 세례 안에 주어지는 은총은 아직 사도들의 안수로 내려지는 성령의 선물과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7, 17; 19, 6). 때때로 charis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호의라는 개념과 달리 단순히 호의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시간적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은총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다. 나중에 신학적 개념은 스테파노가 “은총과 힘의 충만함”이라고 부렀던 개념과 매우 접근한다. 어떻든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살았던 실제와 그들이 형성했던 방법은 두가지 차이점이 있다. 성 바울로에게 있어서 은총의 신학은 매우 정확한 형태를 지닌다. 그리고 은총의 개념 그 자체가 빛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그가 체험했던 하느님과의 만남 후, 사울은 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사도 9, 17). 그의 사도적 삶 전체가 그에게 주신 성령에 완전한 순명하는 삶이었다(13, 2-3; 16, 7-10). 비록 그러한 순명이 그를 죽을 위험에 직면하게 했지만(20, 22-23). 성령께 복종은 그에게 비할 수 없는 사도적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놀라운 일들을 이룩하는 힘을 주었다(16, 18; 19, 11-12; 20,7-12; 28, 3-4; 7-10). 방언의 은사(19, 6), 탈혼(2 코린 12, 1-4)의 능력도 주셨다. 결과적으로 그의 놀라운 겸손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2 코린 12, 5-10). 그의 순종은 그를 그의 개별적 체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그의 영적 삶에 대한 이론은 하룻밤 사이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2)에서 바울로가 베드로의 지지와 더불어 다른 사도들보다 한 걸음 앞서서 이방인들에 대한 보편적 구원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갈라디아서(2, 1-10)에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훗날 드러내는 사고의 발전의 한가지 징표라는 것이다. 우리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행한 그의 설교 안에서 신앙에 의한 의화라는 사고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도 13, 38). 이러한 담화들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의 바울로의 가르침과 친근한 루가에게서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을 수 있다. 종말론적 사건에 신경을 쓰고 있는 테살로니카서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1 테살5,16.25; 2 테살 1,11). 그들은 하느님의 무상적 자비의 덕택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로 해서 충실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했다(1 테살 1,4; 2 테살 2, 13-14). 아울러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은총을 상기해야 했다(2 테살 2,16; 1,12). 사도 바울로는 항상 그가 편지를 써 보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기를 기원하고 있다(1 테살 1,1; 2 테살 1,2). 은총이라는 단어는 어떻든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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