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바울로: 은총과 죄(사목서간들(중))

 

바울로의 은총 사상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면, 바로 에페 1,3-10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게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축복(benedizione)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4.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elesse)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predestino’)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져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grazia)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당신의 피)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redenzione)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 우리에게 온갖 지혜(Sapienza)와 총명(prudenza)을 넘치도록 주셔서


        9.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Charis라는 용어가 6절에 나타나고 있다. 이 용어는 이 단락에서 나타나는 다른 개념들을 통하여 규정되고  그 풍부한 내용을 얻고 있다. 특히 축복, 선택, 예정, 구원, 지혜, 총명 등의 개념이 그렇다. 본질적으로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지는 선물로 이해되고 있다. 은총은 인간의 모든 계획과 원의를 넘어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결정에 근거한다. 이른바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부성적 모습에 기인한다. 이러한 성부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달하게되고 그분을 향하여 정향되어 있어서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사랑 받으시는 그 분 안에서 “은총의 덕택으로”우리에게 선사되는 것이다.


        은총의 첫째 특징은 성부의 축복이다. 이름하여 영적 축복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선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 성부께서 선사하시고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축복은 어떤 천상적 존재보다 뛰어난, 신적 초월의 영역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다. 즉 인간 실존을 장악하고 다스리려는 모든 권능, 특히 악의 세력을 초월하시는 그분에게 속한 것이다. 은총이 발생하는 순간은 특별히 세례성사의 순간이다.


        이미 역사적 사건 이전에, 모든 사건과 세상 창조 이전에 하느님의 아버지다운 사랑이 우리를 선택하셨다(우리의 존재는 어디까지 소급시킬 수 있는가? 나의 존재가 존재하기 위하여. 천지창조 이전으로 소급되지 않는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적 초월성은 신적 자유의 총체적 독립성을 수반한다.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택들은 그분 자신의 선한 의지에 기인한다. 은총-선택의 대상은 ‘하느님 아버지 앞에 거룩한 자, 무죄한 자들이 되어야 하는 우리들의 초월성이다’. 이러한 초월성은 하느님의 영원성에 그 출생의 기원과 장소를 지닌다. 우리는 이와같이 절대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그분과 그분의 인격적 세계에 속하는 자가 되도록 불리움을 받고 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하느님의 현존 앞에 우리는 영원히 무죄한 자들이 된다. 즉 선물-봉헌-온전한 희생이 된다.


        이와 동일한 초월성의 개념은 은총-축복의 두 번째 특성을 말해준다. 즉 예정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기 원하시기 이전에 우리로 하여금 성부의 자녀들로서 규정하신 것은 하느님의 의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서있는 셈이다. 단지 순수한 선물로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생한 그분의 사랑에 대한 찬미인 셈이다. 선택과 결정적인 축복으로서의 예정은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서, 그분과 성부, 두분 모두를 향한 역동성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발생한 그분의 중재와 더불어 우리는 죄로부터의 자유, 구원을 얻으며 신적 초월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종말론적 세상 안에서 영적 육체적 존재의 변화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은총-축복의 또 다른 측면은 지혜와 총명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 가운데 성부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신비를 실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즉 역사의 충만함과 우주의 일체성을 실현하는 역동성 이면에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드러내심이다. 그리스도없이 역사는 공허하며 우주는 무의미하다.


        에페소의 이 단락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적 전망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은총은 성령을 주시는 성부의 사랑이 선택하고, 예정하고 구원하는 것이며 지혜와 그 총명함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활동을 통하여 발생하는 것은, 그분이 주님이신 만큼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를 오로지 주님의 다스림하에 놓게하신 것이다. 그분은 선택과 예정의 중재자이시며, 성부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선사되고 실현되는 모든 것이다.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마침내 축복은 은총의 특징적인 모든 측면이 완수된다.


        은총은 오늘날 삼위일체의 실존 영역 안에 인간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하느님의 개별적인 위격과 관련된 초월적이고 신적인 삶에로의 초대요, 절대적인 무상의 선물이다. 우리는 피조물로서의 능력을 초월하는 선물이다. 은총의 첫 번째 원천은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성부는 모든 삼위일체적 삶의 원천이요 기원이다. 그분의 목적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혹시 말할 수 있다면 성부는 인간-하느님의 초월적 관계의 궁극적 상대자, “너”이시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중심이요, 중재자이시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받고, 선택되고, 예정되었다. 은총은 한편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결국 성령은 선물이다. 그 안에 은총이 고유하게 자리잡고 있다. 성령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따라서 성부와도 일치하며 삼위일체 안에, 교회 안에, 그리고 그분의 충만함으로 새롭게 된 세상 안에 참여하게 된다. 은총은 성부의 사랑인 동시에 그리스도와의 일치요, 성령이라는 선물이다.


        에페소 이 단락의 배경에는 교회론적 측면도 담겨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천상적 영역은 ‘그분의 몸’ 즉 교회다. 성부의 자녀로서 선택되고 예정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교회적 신비체 안에서 일치에로 선택되고 예정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교회적 신비체를 통하여 역사적인 죄로부터 구원되고 새롭게 된 역사와 우주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삼위일체적 성격을 띤 은총 안에서 결국 인간 상호의 주체적 관계들도 다시금 정의하게 된다.




신약성서의 은총 이해를 마무리하면서 한가지 지적할 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즉 하느님과의 친교와 이웃과의 친교의 관계이다.


        신약성서의 은총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삼위일체적, 인간학적, 그리고 교회론적 특징을 띤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인간이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아버지 하느님의 다스림으로 묘사된다. 바울로와 요한에게서도 은총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신자성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은총으로 우리에게 선사된 그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선물로서 이룩하게 되는 하느님과의 친교다. 이런 점에서 삼위일체적 초자연적 성격을 띨 뿐만 아니라, 그렇게 초자연적 수준으로 인간의 상승 내지 현양이라는 인간학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종말에 가서 충만하게 이루어질 그 은총은 지금 여기에서 세례 성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실현된다는 교회론적 측면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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