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 아우구스티노
그 대표적인 사상을 아우구스티노에게서 본다. 그의 [고백록]에서 보듯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주체성, 자신의 개인성, 독자적 책임성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고독, 무력함, 연약함이 자각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의 은총체험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인간의 유일회성
우주라는 거대한 전체 안에서 인간은 그 한 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서 위격적인 하느님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이 자신에게로 귀환하고 자기 자신에게 관련될 때 “자아”로서 “너”이신 하느님 앞에 서 있게 되는 인간존재를 체험한다. “하느님-나”의 관계가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의 결정적인 기점이 되고 있다. “나는 하느님과 영혼을 알고 싶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Deum et animam scire cupio, nihil plus nihil omnino)”.
2) 인간의 부자유, 죄에로의 타락성
아우구스티노는 먼저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자유, 자신이 스스로에게 노예가 되어 있는 사실을 먼저 발견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세력하에 있지 않다”. 죄악으로 감염된 인간 본성은 선을 행하도록 작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 무력한 주체성은 하느님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근본으로부터 쇄신될 수 있다고 보았다.
3)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은총 중재
인간은 심층에서부터 진정한 사랑, 참된 자유를 선사하는 내적이고 비가시적인 힘을 필요로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말미암아 한 단계 한 단계 인도된다. 사실 예수의 모범도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힘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예수의 모범조차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은총이란 하느님이 직접 인간의 주체성을 뚫고 들어 이 주체성을 철저하게 변모시키는 무엇이다. 이점에서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은총의 주도권을 강조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은총에 의존하는 존재, 수용적인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을 분이다. 때문에 그는 사도 바울로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1 코린4, 7).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느님의 은총의 관계를 위해 무척이나 고심하였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 자유의지를 위하여 무척 애를 썼으나, 하느님의 은총이 승리하였다”. 이러한 정식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가 서로 경쟁하는 두가지 요소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이 커지면 인간의 자유는 작아지고, 인간의 자유가 커지면 하느님의 은총이 작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는 일정한 밀폐된 공간에 들어 있어서 상대적 요소를 제한하는 그런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요소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