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이레네오
이레네오는 사도 바울로와 요한의 은총 이론을 체계화한 첫 번째 교부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모든 인간을 다시 이끌어들이기 위하여(Recapitulate) 오셨다. 죄로 인하여 파괴된 하느님의 일을 개선하고, 인간에게 풍부하게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처럼 성령은 인간 영혼의 손님이 되신다.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대조적으로 육체 자체는 하느님의 성전이 된다. 물론 영은 내재적 일치의 원리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미리 맛보는 항구한 삶의 보증이다. 이레네오에게 완전한 인간은 육체, 영, 그리고 성령이 만든다. 그 영은 영혼의 생명이다. 영혼이 육체의 생명인 것처럼. 과연 이것이 이레네오의 작품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의 글이 바유스에게 대답하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신학적 논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떻든 이레네오는 창조된 선물과 창조되지 않은 선물의 구별이라는 윤곽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모든 지체의 생명인 영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영이기도 하다. 이레네오에게서 구원 신학은 인간을 그 목표로 차츰 이끄는 교육과정의 개념과 연결된다. 그 목표란 ‘인간의 삶이신 하느님을 직관함’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느님이 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되도록 되어 있다. ‘신화란 그러므로 은총이다’. 이레네오는 종말론적 전망 하에서 성령은 우리에게 신적 생명을 주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 안에 있게 하신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에 진정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스인들보다 유다인들이 더욱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육체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인간이 하느님이 되도록 되어 있다는 이레네오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적 낙관주의의 기초가 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러한 낙관주의가 아우구스티노의 비관주의를 대신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