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펠라지아니즘:구원 의지와 신앙의 시작-초기 논쟁의 모습:Cassian과 Prosper

 

9.1 초기 논쟁의 모습: Cassian과 Prosper


그 논쟁은 아우구스티노 살아 생전부터 시작되었다. 425년경 아우구스티노가 Adrumentum에서 그의 수도자들에게 영성적 근거로서 은총의 개념을 정립하려고 노력할 때, Cassian은 그의 수도원에서  Thirteenth Conference를 작성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구원의 시작이나 회개의 시작은 우리 인간의 고유한 작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Mareille의 수도원에서 De correptione et gratia의 이론으로 놀라고 있는 동안 아우구스티노의 성실한 제자들은 그 지역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오류들을 그에게 보고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De predestination sanctorum이라는 논제로서 해답하였다. 그리고 De dono perseverantiae라는 책은 분명 Cassian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발생한 비판을 맞이해서 쓰여진 것이다. Cassian은 만일 모든 것이 은총으로서 주어진다면 아무것도 인간의 의지를 위해 남겨진 것이 없게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죽었고, Marseille 추종자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 대항하여 아우구스티노의 예정설이 요약되어 사용되었다. Prosper of Aquitaine는 아우구스티노의 진정한 가르침일 것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옹어하였다. Prosper는 은총의 선물을 전유하는데 실패한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공격하였다. 그는 아우구스티니즘을 로마로부터 승인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교황 첼레스티노는 일반적인 형식문에 자신이 만족하고 거기에 너무 깊이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투쟁은 첼레스티노 교황 후계자들에게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교황 식스도 치세 때이다. 그는 오류를 대항하여 아우구스티노를 다시 한번 인용한다. 그의 Commonitorium라는 작품에서 그리고 강력한 아우구스티니즘의 반대자들은 Vincent of Lerins, 그리고 Cassian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그의 Thirteenth Conference를 발간하였다. 한편 Prosper는 Liber contra Collatorem을 썼다. 그러나 Cassian은 435년 사망하였다. 그 논쟁은 사그라졌고 Prosper는 로마에서 여러 작품들을 썼다. 특히 오랑제 공의회에의 결정에서 볼 수 있는 아우구스티노의 문장들을 수집하였다. De vocatione omnium gentium은 역시 Prosper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비신자들의 구원에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는 아우구스티니즘의 정신에 매우 충실하다. 그것은 우주의 보편적 의지를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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