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이론- 자유, 하느님의 동인, 은총

 

10. 2. 자유, 하느님의 동인, 은총


의지란 완전한 행복을 발견하는 최고선을 향한 본성의 경향이다. 의지의 합당한 대상은 최고선이다. 그러나 최고선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의무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최종적 목적을 위한 중간 목적들에 대한 선택의 능력으로서의 의지를 자유 의지라 부른다. 이러한 선택은 합당한지 그렇지 못한지 가치와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자유 의지는 토마스에 의하면 이성으로서의 의지로도 불리운다. 의지에 대한 하느님의 동인은 필연적이다. 그는 의지에 대한 지성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유 의지가 절대적인 선이 아닌 어떤 대상을 마주해서도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의지가 인식을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하면 그 반대로 지성은 왜 의지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는데 적용된다.  그러나 만일 지성과 의지의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에 머물러 있다면 어떤 것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들은 인식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바탕으로 원한다. 서로 비교하면서 선택한다. 사실 지성적 활동성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결과 선택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느님이 지성을 행할 수 있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 하느님의 움직임(동인)은 필연적 가능성의 조건이요 근거이다.


        지성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의지는 선호하는 것을 선택한다. 의지가 지성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행동적이다. 구체적인 선택은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은 그 행위에 의존한다. 예를 들면 한 인간은 어떤 대상을 눈에 전개되는 한 인지한다. 행위는 늘 주체에 의존한다. 의지는 인식에 의존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할 때 그것을 욕구할만한 선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의 훈련은 의지 자체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마지막 동기가 의지에 항상 의지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결정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해서 선택할 때 그에 앞서서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거스리는 것인지 평가한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평가를 또 해야한다. 이와같은 전제를 계속 무한히 연역해 나갈 수 없다. 그 연역이 무한하다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선택되지 않는다. 인간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을 결정한 충분한 이성, 고유한 활동적 능력을 훈련할 충분한 이성을 지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그 능력을 움직이시는 것이 필연적이다(하느님에 관한 우주론적 존재 증명).


        하느님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첫 원인으로서 각각의 본성을 따라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바를 따라서 피조물 안에 작용하신다. 본성의 힘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또 어떤 목적을 이루는 행위를 완성할 수 있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에 따르면 죄인들의 의화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순서적으로 또 동시적으로 필요하다. 첫째 은총의 주입이다. 둘째는 하느님을 향한 자유 의지의 동인이다. 셋째는 죄를 거스리는 자유 의지의 동기요, 넷째는 죄의 용서이다. 이 용서는 ‘은총의 결과’이다. 의화란 이러한 후속적인 국면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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