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너의 은총 이해-창조되지 않은 은총과 창조된 은총의 관계

 

14.3. 창조되지 않은 은총과 창조된 은총의 관계


이와같은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중시하는 가운데 이 존재를 하느님과 연결시키고자 하고 있다. 특히 토미즘에서 존재론적인 기초이며 선험적 근거인 상(像 species)의 개념을 이끌어들인다. 이로써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온전히 인식되려면 바로 하느님 자신이 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아울러 하느님 자신이 하느님에 대한 인간 인식의 근거, 즉 상이 된다면 그 상은 하나의 창조된 상(geschaffenen species)일 수 없다. 인간이 묻는 하느님이 그 물음 안에서 ‘이미’ 온전하게 알려져 있으려면, 그 상은 원천적으로 ‘창조되지 않은 상’(ungeschaffenen species)이어야 한다. 상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하느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 자신이 창조되지 않은 상의 역할을 담당하신다.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하느님 인식의 존재론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기 위하여 스콜라 신학의 ‘준형상인성’(quasi formal causality)개념을 원용한다. ‘형상인성’(formal causality)이란 ‘인간 지성 안에 부여된 하느님 자신의 직접적 현존’이며, ‘준형상인성’이란 하느님의 그 직접적인 현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 측면의 전제이다. 하느님은 ‘형상인성’을 통하여 ‘창조되지 않는 상’의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은 ‘준형상인성’을 통해 그 창조되지 않은 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한 관계로해서 인간은 하느님을 인식하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준형상인성’ 안에서 자신을 전달하시는 하느님은 ‘형상인성’으로서 ‘창조되지 않은 은총’이며, 역시 인간에 의해 수용된 하느님은 ‘창조된 은총’이다. ‘창조되지 않은 은총’이란 ‘인간 지성 안에 부여된 하느님 자신의 직접적 현존’이다. 이 은총이 ‘창조된 은총’에 선행하면서 인간에게 이미 선험적으로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창조되지 않은 은총’이 현실화될 때 비로소 ‘창조된 은총’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은 대상적으로 바라보는 타자가 아니다. 이미 인간 안에서 인간의 경험 이전에 인식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험적이고 또 구조적으로 하느님을 인식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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