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너의 은총 이해-라너의 은총론의 결론

 

14.5. 라너의 은총론의 결론


이처럼 은총은 인간을 규정해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근거가 된다. 인간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라너는 은총을 통한 이러한 인간 규정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질도 보고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것 역시 하느님의 은총과 별개가 아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건이 인간이듯이, 그리스도교 역시 스스로를 내어주는 하느님 자신이다. 라너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본질도 은총의 실존론적인 측면에서 찾은 셈이다.


        


        “그리스도교는 살아있는 하느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살아있는 은총의 하느님이 용서하면서 우리에게 구원과 의화를 주고, 자기 영광을 통교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주는 것은 그 최종 근거에 있어 창조된 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기 때무에, 그리스도교는 최종적으로 단순히 스스로 인간에게 오는 영원한 하느님 자신이며, 당신 은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당신 자신이다…. 하느님 편에서 보건대 이것은 인간을 위하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은 그 사랑에 의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준다. 또한 이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때 그것은 하느님을 위하는 인간의 사랑이고, 인간은 그 사랑을 하느님 자신인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인다” (칼 라너,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 김수복역, 33-34).


        


        이처럼 라너는 그리스도교를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본다.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말할 수 있는 곳, 그곳은 인간이 하느님을 자신을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지는 장이며, 동시에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장이다.


        이런 식으로 라너는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답게 되도록 해주는 근저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근저에서는 초월과 내재, 무한과 유한, 신과 인간이 결코 대립적이 아니다. 인간의 신적 지향이 단순한 지향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지향 안에서 그 지향에 이미 도달해 있다. 목표를 향해 목표 안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현존 경험과 신적 지향은 하나가 된다. 이러한 라너의 인간 규정, 은총론은 신과 인간이라는 이원론적인 전통 신학 한복판에서 그 이원론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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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너의 은총 이해-라너의 은총론의 결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4.5. 라너의 은총론의 결론

    이처럼 은총은 인간을 규정해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근거가 된다. 인간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라너는 은총을 통한 이러한 인간 규정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질도 보고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것 역시 하느님의 은총과 별개가 아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건이 인간이듯이, 그리스도교 역시 스스로를 내어주는 하느님 자신이다. 라너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본질도 은총의 실존론적인 측면에서 찾은 셈이다.

            

            “그리스도교는 살아있는 하느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살아있는 은총의 하느님이 용서하면서 우리에게 구원과 의화를 주고, 자기 영광을 통교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주는 것은 그 최종 근거에 있어 창조된 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기 때무에, 그리스도교는 최종적으로 단순히 스스로 인간에게 오는 영원한 하느님 자신이며, 당신 은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당신 자신이다…. 하느님 편에서 보건대 이것은 인간을 위하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은 그 사랑에 의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준다. 또한 이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때 그것은 하느님을 위하는 인간의 사랑이고, 인간은 그 사랑을 하느님 자신인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인다” (칼 라너,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 김수복역, 33-34).

            

            이처럼 라너는 그리스도교를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본다.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말할 수 있는 곳, 그곳은 인간이 하느님을 자신을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지는 장이며, 동시에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장이다.

            이런 식으로 라너는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답게 되도록 해주는 근저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근저에서는 초월과 내재, 무한과 유한, 신과 인간이 결코 대립적이 아니다. 인간의 신적 지향이 단순한 지향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지향 안에서 그 지향에 이미 도달해 있다. 목표를 향해 목표 안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현존 경험과 신적 지향은 하나가 된다. 이러한 라너의 인간 규정, 은총론은 신과 인간이라는 이원론적인 전통 신학 한복판에서 그 이원론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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