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교사인가?-어떻게 할 것인가?

 

3.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자신을 선교사로서 확신하고 자각을 하면서,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그 확신에 비해 자신있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은 내 자신에 대한 당부와 바램으로 적는 글이다.




우선, 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이기에, 세상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전해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오늘날의 세상은 그야말로 사랑이 없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알지만, 과연 그분이 사랑이심을 알고 체험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개념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나는 교회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다. 나는 미래의 사제로서 교회를 통하여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그 성사를 통하여 구원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는 교회 안에서만 선포되고 나누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나는 수도원으로부터 파견된 수도자이다. 수도자란, 하느님을 찾고 찾은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왜 하느님을 찾고 닮으려는가? 그것은 내 자신의 성화라는 것도 있지만, 더욱 궁극적인 것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고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구체적인 삶과 수행으로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야 할 것이다.


넷째, 나는 누구인가? 수도자이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의 성직자이다. 그러기에 나는 선교사이다. 선교사는 무엇인가? 선교사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파견된 사람이다. 여기에 나 자신을 위한 것이나 그 몫은 없다. 만약에 선교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그 사명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선교사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선교사는 자기 자신이 목적이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와 수도원을 통하여 사는 선교사인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나에게 몰려드는 두려움을 자각한다.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몰려오는 두려움은 내가 그렇지 않게 살았다는 후회와 반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이신 당신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멘.” 끝으로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적으면서 이 글을 맺는다.






“실상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게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게 부과되는 필연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는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1고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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