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정책과 전개과정 및 최근의 북한 교회 실상-최근의 북한교회 실상

 

6. 최근의 북한교회 실상




최근의 북한의 개신교 현황을 보면 북한에는 가정교회가 약 500개소가 있는데 평양특별시, 남포직할시, 개성직할시에 각 30개소씩 있고 평안남북소에 각 60개소, 그외의 소에는 40여개씩 있다고 한다. 다만 양강도, 자강도는 산간지역이라서 가정 교회가 없다. 그리고 1972년 기독교 연맹의 활성화와 더불어 신학원을 세웠고 교육기간은 3년이다. 여기 신학원의 졸업생이 모두 71명인데 현재 목사수는 35명이며 나머지는 전도사로 5년에서 8년간을 일하고 있다. 목사 안수는 기독교연맹에서 한다.


1988년 11월 6일 첫 예배를 드린 평양시 봉수리에 봉수교회가 세워진 이래 교인들이 새롭게 지하에서 나오는데 현재 드러난 교인만도 북한 전역에 1만여 명이고 평양시에만 1천명으로 계산하고 있으나 실제로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가정교회(간판을 부착하고 있다고 함)도 평양과 그 주변에 수백 개소가 있는데 1993년 1년동안에도 10여개 가정교회가 더 문을 열었다고 말하였다.1) 이같은 북한 기독교의 교세현황은 개신교의 박완신 장로가 북한 기독자들을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편 천주교 상황을 보면 현재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나 있는 교회의 모습은 1987년 6월 30일자로 결성되었다는 「조선천주교인협회」와 1988년 9월 말에 완공된 장충성당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신도공동체가 전부이다.2)


지금 북한에는 신부가 없기 때문에 사목활동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충성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기도모임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교리교육을 통한 새 영세자의 증가보다는 ‘구교우’찾기에 조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3)


1988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캐나다 교회 협회 대표자들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약 800여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도 있다. 이어서 1988년에 장충성당이 세워졌을 때 교황청 특사의 자격으로 방북한 장익, 정의철 신부가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89년에는 김일성이 신년사를 통해서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했다. 이 때를 전후하여 공식 비공식, 합법 비합법의 형태를 떠나서 남북한 신도간의 접촉이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 접촉의 빈도도 점차 강화되어 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룩된 남북한 신도들의 만남으로는 1995년 10월 미국 뉴저지 포트리(Fort Lee)에서 서울대교구 민족 화해 위원회 위원들과 미국 동북부 지역의 신도들이 조선 천주교인협회 신도를 비롯한 북한 동포들과 만나서 상호간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 모임에서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현재 북한에는 3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있고, 원산과 해주에 공소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도들은 한국 전쟁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1991년 이래 「카톨릭 기도서」를 비롯한 각종 교회  서적들이 간행되고 있다. 북한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서 간행된 이와 같은 서적들은 북한 교회의 활성화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천주교인협회는 창설이래 수회에 걸쳐서 성명서와 담화문 등을 발표한바 있다. 현재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 위원회 위원장에는 장재철(사무엘)이 위원장으로 있으며, 평양 장충성당 회장에는 차성근(율리오)이 봉사하고 있다.4)


그렇다면 지금 현재 지하로 잠적한 신앙공동체 신자의 숫자는 어느 정도로 파악할 수 있는가 ? 정확한 숫자는 알기 힘들지만, 북한에서 월남한 숫자와 6∙25 기간중에 희생된 숫자 등을 감안하더라도 아직까지 적어도 1만 5천명 정도는 남아 있을 것으로 북한선교위원회에서는 보고 있다. 북한선교위원회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드러나지 않게 신앙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간직해온 집안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경우가 있고, 자녀들에게 조차 밝히기 힘든 경우라 하더라도 부모가 죽음을 앞두고서는 유언을 통해 신앙을 말해 주면서 앞으로 때가 오면 성당에 나가서 영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자녀들의 경우 본인은 모르더라도 부모에 의해 유아세례와 같은 대세를 받았을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는 감취져 있다 하더라도 북한사회의 변화가 따라온다면 자신이 신앙을 지켜온 집안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중국 연변지역에 친척방문 형식으로 나왔다가 비밀리에 신부님을 만나 영세를 받고 가거나 고해성사를 받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5)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종교정책 과정과 현재의 북한 교회의 현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현재 우리는 북한 교회의 활동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 없다. 남북한 교회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북한 교회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 하기에 간접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비록 북한의 종교활동이 정치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 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아직도 신앙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모든것도 하느님이 역사하시고 섭리하심으로 받아들여 북한 동포들의 신앙의 뿌리가 점차 자라서 참 진리와 복음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을 날이 속히 오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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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6. 최근의 북한교회 실상


    최근의 북한의 개신교 현황을 보면 북한에는 가정교회가 약 500개소가 있는데 평양특별시, 남포직할시, 개성직할시에 각 30개소씩 있고 평안남북소에 각 60개소, 그외의 소에는 40여개씩 있다고 한다. 다만 양강도, 자강도는 산간지역이라서 가정 교회가 없다. 그리고 1972년 기독교 연맹의 활성화와 더불어 신학원을 세웠고 교육기간은 3년이다. 여기 신학원의 졸업생이 모두 71명인데 현재 목사수는 35명이며 나머지는 전도사로 5년에서 8년간을 일하고 있다. 목사 안수는 기독교연맹에서 한다.

    1988년 11월 6일 첫 예배를 드린 평양시 봉수리에 봉수교회가 세워진 이래 교인들이 새롭게 지하에서 나오는데 현재 드러난 교인만도 북한 전역에 1만여 명이고 평양시에만 1천명으로 계산하고 있으나 실제로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가정교회(간판을 부착하고 있다고 함)도 평양과 그 주변에 수백 개소가 있는데 1993년 1년동안에도 10여개 가정교회가 더 문을 열었다고 말하였다.1) 이같은 북한 기독교의 교세현황은 개신교의 박완신 장로가 북한 기독자들을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편 천주교 상황을 보면 현재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나 있는 교회의 모습은 1987년 6월 30일자로 결성되었다는 「조선천주교인협회」와 1988년 9월 말에 완공된 장충성당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신도공동체가 전부이다.2)

    지금 북한에는 신부가 없기 때문에 사목활동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충성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기도모임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교리교육을 통한 새 영세자의 증가보다는 ‘구교우’찾기에 조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3)

    1988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캐나다 교회 협회 대표자들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약 800여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도 있다. 이어서 1988년에 장충성당이 세워졌을 때 교황청 특사의 자격으로 방북한 장익, 정의철 신부가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89년에는 김일성이 신년사를 통해서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했다. 이 때를 전후하여 공식 비공식, 합법 비합법의 형태를 떠나서 남북한 신도간의 접촉이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 접촉의 빈도도 점차 강화되어 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룩된 남북한 신도들의 만남으로는 1995년 10월 미국 뉴저지 포트리(Fort Lee)에서 서울대교구 민족 화해 위원회 위원들과 미국 동북부 지역의 신도들이 조선 천주교인협회 신도를 비롯한 북한 동포들과 만나서 상호간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 모임에서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현재 북한에는 3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있고, 원산과 해주에 공소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도들은 한국 전쟁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1991년 이래 「카톨릭 기도서」를 비롯한 각종 교회  서적들이 간행되고 있다. 북한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서 간행된 이와 같은 서적들은 북한 교회의 활성화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천주교인협회는 창설이래 수회에 걸쳐서 성명서와 담화문 등을 발표한바 있다. 현재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 위원회 위원장에는 장재철(사무엘)이 위원장으로 있으며, 평양 장충성당 회장에는 차성근(율리오)이 봉사하고 있다.4)

    그렇다면 지금 현재 지하로 잠적한 신앙공동체 신자의 숫자는 어느 정도로 파악할 수 있는가 ? 정확한 숫자는 알기 힘들지만, 북한에서 월남한 숫자와 6∙25 기간중에 희생된 숫자 등을 감안하더라도 아직까지 적어도 1만 5천명 정도는 남아 있을 것으로 북한선교위원회에서는 보고 있다. 북한선교위원회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드러나지 않게 신앙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간직해온 집안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경우가 있고, 자녀들에게 조차 밝히기 힘든 경우라 하더라도 부모가 죽음을 앞두고서는 유언을 통해 신앙을 말해 주면서 앞으로 때가 오면 성당에 나가서 영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자녀들의 경우 본인은 모르더라도 부모에 의해 유아세례와 같은 대세를 받았을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는 감취져 있다 하더라도 북한사회의 변화가 따라온다면 자신이 신앙을 지켜온 집안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중국 연변지역에 친척방문 형식으로 나왔다가 비밀리에 신부님을 만나 영세를 받고 가거나 고해성사를 받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5)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종교정책 과정과 현재의 북한 교회의 현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현재 우리는 북한 교회의 활동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 없다. 남북한 교회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북한 교회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 하기에 간접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비록 북한의 종교활동이 정치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 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아직도 신앙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모든것도 하느님이 역사하시고 섭리하심으로 받아들여 북한 동포들의 신앙의 뿌리가 점차 자라서 참 진리와 복음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을 날이 속히 오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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