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4항-11항)
“모든 시대와 특히 현대 교회의 최우선 과업은 인류의 정신과 의식과 경험을 그리스도의 신비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의 변화 때문에 혹자들은 자문한다. 이 시대에도 비그리스도인에게 선교하는 것이 타당한가? 여러 종교간의 대화가 선교를 대신하지 않는가? 인간적 발전이 교회 사명의 목적이 아닌가?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모든 개종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어떤 종교를 통하여도 구원될 수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선교할 필요가 있는가?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요한 14, 6)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편성은 신약 전체에서 주장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시의 결정적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당신을 보여 주셨고 당신이 누구이신지 인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확실히 결정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이 계시로 인하여 교회는 본성적으로 선교적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신 충만한 진리이다.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식으로라도 분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비의 여러 가지 국면을 고려하는 것이 가당하고 유익할지라도 이 신비의 단일성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인간의 자유에 제공된 것이다. 선교 활동의 필요성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고 그 제자들이 살아온 생명의 근본적 새로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 새로운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합당하도록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기를원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표지요 길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주심을 감안할 때(1디모 2, 4 참조), 교회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개자로 세우셨음과 교회자신이 구원의 보편적 성사임을 고백한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다. 구원의 보편성이란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 것이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4, 20) 왜 선교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경험에 의하여 참된 개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즉, 오늘 이 시대의 유혹은 그리스도교를 순전한 인간적 지혜 내지 일종의 유쾌한 처세술로 바꾸는 것이다. 왜 선교하느냐고? 왜냐하면 성 바오로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은총을 주셔서 그리스도께서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하시다는 기쁜 소식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셨기”(에페 3, 8) 때문이다. 선교사명은 주님의 명시적 명령에 의해서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생명의 깊은 요청에서도 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