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선교 방법(41항-60항)
선교는 한 가지 현실이지만 복합적인 것이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개된다.
선교의 첫째 형태는 증거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스승보다 증거를, 주장보다 경험을, 이론보다 실천을 더 믿는다. 선교의 첫째가는 아주 중요한 형태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증거이다. 첫째가는 증거의 모양은 새로운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선교사와 그리스도교 가정과 교회 공동체의 생활 자체이다.
교회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의 부패에 대하여 용감하게 예언자적으로 대항하고, 영광이나 현세적 이들을 찾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재화를 사용하고, 그리스도의 순박한 생애를 따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소명되었다.
구세주 그리스도께 관한 첫 선포. 복음 선포는 선교의 항구한 우선적 원칙이다. “복음화는 그의 모든 활력의 기초요 중심이요 정점으로서 다음과 같은 명백한 선언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즉, 하느님 자신의 은총과 자비의 선물로서 그리스도 안에 모든 이에게 구원이 제공된다는 선언이다.”1) 이 선포의 주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악과 죄와 죽음에서 참으로 완전히 해방된다.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리고, 선교사는 교회의 명에 의하여 현장에 존재하고 출동하며, 비록 혼자서 일할지라도 보편 교회의 선교 활동에 보이지 않는 밀접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2). 복음 선포는 선교사에게 용기와 열성을 주는 신앙으로 자극을 받아 시작된다. 또한, 비그리스도인에게 선교하면서 선교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 개인과 백성들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진리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방법에 관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수락하는 생명의 희생은 최고의 증거이다.
회개와 세례.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는 그리스도교적 회개를 지향하는데, 이 회개는 신앙으로써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완전하고 진지하게 귀의하는 것이다. 교회는 요한 세자(마르 1, 4 참조)와 그리스도의 모범(마르 1, 14-15 참조)을 따라 만민을 회개에로 초대한다.
그리스도께로 회개하는 것은 세례와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실천에서뿐 아니라 만민을 제자로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하여 사도들을 파견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뜻에 의하여 분명하다(마태 28, 19 참조).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 충만한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한 내적 필요성에 의하여 세례와 결부되어 있다. 외방 선교가 전개되는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의 회개를 세례성사에서 분리하여 세례는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앞서 말한 모든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역 교회의 설립. 선교 교령 2항과 교회 헌장 9항에서와 같이, 외방 선교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의 부식(扶植)이라는 교회사의 단계는 지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작할 필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업의 의무는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과 모든 선교 단체들과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있다. 모든 교회는 비록 신입 신자들의 교회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며 복음화되고 동시에 복음화하는 교회이다. 그리고, 신앙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나타나야 하고, 가정과 본당과 단체 등 공동체 안에서 완수되고, 말과 실천의 증거로써 밖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일치 운동의 활동과 선교 활동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밀접히 관련된 두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게 한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 인에 영세한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불완전하지만 일종의 친교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의 기초 공동체는 복음화의 힘이다. 젊은 교회들 안에서 신속히 번창하고 있고 주교들과 주교회의들이 사목 활동의 우선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기초 공동체이다(다른 이름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심처로 인정되고 있다. 기초 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경 독서와 교회 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동체들은 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가 되고, 새로운 직무의 기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무되어 분열과 족벌과 종족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복음과 민족 문화와의 융합. 토착화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인 변모가 이루어지는 것과, 여러 가지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되는 것을 의미하기”3) 때문이다. 이러한 토착화를 통하여 교회는 여러 가지 문화에 복음을 융화시키고 동시에 백성들을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함께 교회 공동체 안에 받아들인다4).
특히 신중을 요하는 토착화 문제에 대하여 같은 지방의 개별 교회들 상호간에5) 그리고 보편 교회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를 아울러 고려해야만, 지역 교회들이 신앙의 보화를 정당하고 다양한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6).
올바른 의미의 토착화는 두 가지 원리에 의존한다. “복음에 합치되고 보편 교회에 일치한다.”는 것이다7).
타종교 형제들과의 대화. 사실 선교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모르고 많은 경우에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구원은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과 대화가 복음화 의무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8).
그리고, 종교 전통들의 전문가들이나 공식 대표들 사이의 토론에서 종교적 가치의 충만한 발전이나 수호를 위한 협력에 이르기까지, 또는 영적 체험의 교환에서 소위 ‘생활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양심 교육으로 발전을 조장한다. 한 백성의 발전은 돈이나 물질적 원조나 기술적 방법에서 우선적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고, 양심과 정신과 행동 방식의 성숙에 기인하는 것이다.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발전의 주역이다.
선교의 원천이요 규범인 애덕. 모든 선교 활동의 선교 정신을 증거하는 자선 사업의 핵심은 사랑이다. 이 사랑은 선교의 원동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힘은 “만사가 그것 때문에 되든지 아니 되든지, 변하든지 아니 변하든지 해야 할 애덕이다. 애덕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요 귀착점이라야 한다. 사랑을 위하여 또 사랑을 따라서 진실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잘못되는 법이 없다.”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