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의 주체인 지역교회
토착화는 일정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리고 그 지역 문화 속에 적응된 그 지역교회가 해야 한다.
보편교회는 공통 개념으로서 교회가 현실로 나타날 때는 지역교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화속에 현실화된 지역교회 안에서 보편교회 또한 성립되는 것이며 보편교회는 지역교회를 통해서만 현실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그지역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백성의 문화, 그들의 요구, 가치관, 그들만의 독특한 인생관,세게관등이 융합되어 형성된 교회이며 동시에 보편교회에 비추어 변질됨이 없는 복음 내용을 가진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는 종교혁명을 겪으면서 교회의 일치를 위한 획일성을 강조해 왔기에 신앙을 모든 민족의 삶의 형태가 아닌 서구형태의 교리,윤리,법으로써 제시해 온 것이다. 그 결과로 신앙과 실생활에는 큰 차이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토착화는 외적인 장식의 형태가 아니다. 그 문화의 깊은 뿌리까지 파고들어 그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서, 인간에서부터 출발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게에서 모든 문화를 복음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신앙이 그들의 생활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이 그 백성들의 생활양식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에 적합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 자신이 구체적인 현실에 있기에 그 종요가 그 문화 현실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신앙이 하느님의 은혜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통교조건에 의해서 지배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문화적 중재와 경험 안에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이 모든 문화를 초월한다 하더라도 시공의 제한을 받는 문화속에 주어졌기에 그 지역 문화,풍습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착화의 주체는 지역교회 자체이다. 오늘날 토착화는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과거 교회는 교회의 분열로부터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고 획일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교회의 자기 쇄신보다 양적인 팽창만을 고집했다. 그 결과 교회는 유럽의 그리스도교화에는 성공했으나 그 뒤 어느나라에서도 초급단계에서의 문화적응을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토착화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유럽에서도조차 토착화 과정이 전개되지 못했다. 그래서 유럽교회를 재선교,재복음화 되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착화는 복음과 문화의 통합,혼합주의가 아니다. 단순한 문화적 적응만도 아니다. 그것은 비판적 동화이며 변형적 승화이다. 그 문화에 순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그 지역문화 속에서 복음과 상반되는 요소에서는 구별되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러면서 복음의 빛으로 그 문화를 변화해가야 한다.
또한 토착화는 지역교회자체도 도전을 받게한다. 지역교회 역시 그 지역문화의 한 부분으로써 계속적인 쇄신이 있어야 하며, 그 지역 문화를 비판할 때 자신에게도 비판적이어야 효과적으로 토착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토착화에 의한 도전이 없었다면 그 지역교회에서 보편교회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매우 빠르다. 그 안에서 교회는 세상의 징표를 제대로 읽어서 그 지역교회가 속한 문화와 생활을 복음의 빛으로 변형 승화시켜야 하며 더불어 그 지역교회에 알맞는 토착화를 항상 현구해야 한다.

토착화의 주체인 지역교회
토착화는 일정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리고 그 지역 문화 속에 적응된 그 지역교회가 해야 한다.
보편교회는 공통 개념으로서 교회가 현실로 나타날 때는 지역교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화속에 현실화된 지역교회 안에서 보편교회 또한 성립되는 것이며 보편교회는 지역교회를 통해서만 현실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그지역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백성의 문화, 그들의 요구, 가치관, 그들만의 독특한 인생관,세게관등이 융합되어 형성된 교회이며 동시에 보편교회에 비추어 변질됨이 없는 복음 내용을 가진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는 종교혁명을 겪으면서 교회의 일치를 위한 획일성을 강조해 왔기에 신앙을 모든 민족의 삶의 형태가 아닌 서구형태의 교리,윤리,법으로써 제시해 온 것이다. 그 결과로 신앙과 실생활에는 큰 차이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토착화는 외적인 장식의 형태가 아니다. 그 문화의 깊은 뿌리까지 파고들어 그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서, 인간에서부터 출발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게에서 모든 문화를 복음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신앙이 그들의 생활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이 그 백성들의 생활양식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에 적합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 자신이 구체적인 현실에 있기에 그 종요가 그 문화 현실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신앙이 하느님의 은혜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통교조건에 의해서 지배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문화적 중재와 경험 안에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이 모든 문화를 초월한다 하더라도 시공의 제한을 받는 문화속에 주어졌기에 그 지역 문화,풍습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착화의 주체는 지역교회 자체이다. 오늘날 토착화는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과거 교회는 교회의 분열로부터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고 획일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교회의 자기 쇄신보다 양적인 팽창만을 고집했다. 그 결과 교회는 유럽의 그리스도교화에는 성공했으나 그 뒤 어느나라에서도 초급단계에서의 문화적응을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토착화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유럽에서도조차 토착화 과정이 전개되지 못했다. 그래서 유럽교회를 재선교,재복음화 되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착화는 복음과 문화의 통합,혼합주의가 아니다. 단순한 문화적 적응만도 아니다. 그것은 비판적 동화이며 변형적 승화이다. 그 문화에 순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그 지역문화 속에서 복음과 상반되는 요소에서는 구별되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러면서 복음의 빛으로 그 문화를 변화해가야 한다.
또한 토착화는 지역교회자체도 도전을 받게한다. 지역교회 역시 그 지역문화의 한 부분으로써 계속적인 쇄신이 있어야 하며, 그 지역 문화를 비판할 때 자신에게도 비판적이어야 효과적으로 토착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토착화에 의한 도전이 없었다면 그 지역교회에서 보편교회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매우 빠르다. 그 안에서 교회는 세상의 징표를 제대로 읽어서 그 지역교회가 속한 문화와 생활을 복음의 빛으로 변형 승화시켜야 하며 더불어 그 지역교회에 알맞는 토착화를 항상 현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