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선교 개념-교회 부식 개념의 역기능

 

2. 교회 부식 개념의 역기능


교회는 오랜 기간 동안 멀리 떨어진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수단으로서 신앙 고백적이며 외적이고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선교를 강조해 왔다. 특히 15세기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교회는 지금까지의 국가의 교회 후원 체제에서 독립하여 선교 업무를 직접 관장하기 위해 포교성성(1622, 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 현 ‘인류 복음화성성’)을 설립하였고, 선교를 아직 지역교회가 설립되지 않은 신대륙에 복음을 선포하는 특별한 행위로 이해했다. 그래서 회개, 영혼 구령, 교회 부식(扶植) 등이 선교활동의 중심을 차지해 왔다.1)


서구인은 종종-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정치가나 교회 지도자들의 눈에는-하느님께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피조물, 계시의 유일무이한 소유자, 세계의 지배자, 세계적으로 유용한 문화의 창시자, 홀로 유용한 과학과 기술의 발명자로 자처한다고 보여졌다. 그에 반해 서구인은 ‘비 서구인들’을 이교도, 야만인,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미개인, 원수로 규정지었다. 여기서부터 파견 의식이 움트고, 선교에의 투신이 이루어지며, 문화와 교육 사업이 시작되고 우월감이 싹튼다. ‘선교’란 용어는 16, 17세기에야 -즉 유럽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펴면서부터-‘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세계의 어느 특정 지역에 파송되는 것’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선교적 활동의 지리적인 목표 지점은 비신자가 사는 곳, 교회가 뿌리를 아직 내리지 못했거나 충분한 안정권에 들지 못한 곳이 되었다. 선교에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끼어 든 것은 식민지 시대 이후의 일이었으니, 각양의 교회와 각색의 종파가 힘써 온 지리적 전파가, 수 백년 이래 유럽의 강권 정책, 서양 문명의 수출,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경쟁 의식과 결부되면서부터 이다.


후켄다이크(Johannes Christian Hoekendijk, 1912-1975)는 유럽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이교도라는 이유로 멸시하는 이러한 경향을 ‘이교화’(異敎化)로 표현하면서 ‘이교화 과정’으로 도식화하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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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활동            →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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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백성        선교                  이교도


문화                 문명                  야만인


하느님 나라          울타리를 침            원수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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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지체  →  십자군 운동       →   이교도


(그리스도교)                                 (이교)


유럽             →  식민지화          →   비유럽


이러한 관점은 인종차별주의(Apartheid)와 선교사 특파원 주의에 입각한 포교적 개념이었다. 이러한 실례는 1610년부터 1848년까지의 파나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인디언의 축소 현상, 그리고 1665년에서 1742년 사이에는 중국에서 조상 제사와 관련된 전례 논쟁과 1704년에서 1764년의 힌두 전례 도입과 관련된 인도 전례 논쟁, 1842년부터 1887년 사이에 있었던 중국과 16개국 크리스챤 국가들 사이에 맺어진 22개의 불평등 조약, 그리고 식민지화된 아프리카에서의 강제노동 등은 인종 차별주의에 근거를 둔 선교 방법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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