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음 선교 : 선포 및 다른 측면들
복음선교는 풍성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실재이다. 여기에는 증언, 대화, 선포, 교리교수, 회개, 세례, 교회 공동체에로의 입적, 교회의 적응, 지역 성직자의 양성, 토착화, 온전한 인간 발전과 해방 등등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복음선교에는 기초, 중심 활동력의 절정으로서 언제나 명백한 선포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선물인 구원을 모든 이에게 베푸셨다.(현대의 복음선교, 27항)
복음 선교와 인류 발전(개발 또는 해방), 이 둘 사이에는 실제로 깊은 연관이 있는데 복음적 질서의 연관 곧 애덕의 연관을 내포한다. 현대의 복음선교 31항에서는 정의와 평화 안에서 참되고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는 가운데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보건데 유의할 점이 있다. “교회의 사명을 단순히 현세 사정에만 국한 시키려 하는 유혹을 종종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의 목표들을 인간 중심의 목적으로 축소시키려 든다. 그리되면 교회가 전해야 하는 구원은 물질적 번영에로 환원될 수 있고 또 교회가 온갖 영적 및 종교적 관심사들을 망각한다면 그 활동은 정치적이나 사회적 질서의 사업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그 자신의 모든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대의 복음선교, 32항)
교회는 인간 해방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결부시키지만 결코 양자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시아에서 교회가 “구원의 성사”로서의 모습보다 오히려 사회적이며 박애주의적 기관으로서의 모습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또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과 같은 뜻깊은 신학적 개념들이 순전히 지상적이고 사회적 실재들로 축소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야 한다.
타종교의 신봉자들을 향하여 교회와 공의회는 ‘존중’의 태도를 취한다. 그 같은 태도는 구체적으로 개방적이고 신실하여 인내로운 대화가 되도록 한다. 이런 대화는 “오로지 사랑을 통하여 진리에로 이끌 수 있는”(사목,92항) 것이어야 한다. 즉 각기 자기 동질성을 보존하고 존경심을 갖고 명료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산 표현이기에 교회는 이 종교들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제기된 문제들이 복잡하다고하여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는 과업을 교회가 포기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신비의 보화를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타종교간의 대화,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친다.
여기에 비그리스도교인들이 회개하지 않은채로 교회 밖에 그냥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하는 질문이 발생한다. ‘본인의 탓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록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에로 이끄신다.’ 하지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과 성스러운 의무를 지닌다. 그러기에 교회는 항상 변함없이 복음전파의 온전한 힘과 필요성을 지닌다.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전에 벌써 거의 모든 아시아의 종교들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비그리스도교인들과 이들의 종교를 속량하기 위해서도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신앙의 행위는 전적으로 자유로워야 하고 또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다.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에서도 표현하였듯이 신앙을 고백하고 확산시키는 자유, 그 결과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변경시키는 자유가 기본 인권을 이루고 있다. 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국제 공동체를 위해서도 그렇다. 따라서 회개와 세례가 교회의 신적 권리를 이루기 이전에 그것들이 당사자의 인간적 권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앙에로, 세례에로, 교회로까지 인도하는 것은 특수한 기본활동이며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의 확고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교회 중심주의”에로 전락되지 말아야 한다는 구실아래 교회와 세례와 회개를 폐지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선포를 포기하는 데에로 귀결되는 신학이론들을 정당시 할 수 없다.
하느님 나라는 대단히 풍성한 의미를 지닌 성서적 개념이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에 있어 중요한 실재이다. 요한바오로 2세가 지적하였듯이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이 예수의 자신의 인격과 행적으로부터 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하느님 나라의 계시와 도구로 세우셨다. 하느님 나라를 순전히 영적이거나 내적 실재로만 간주할 수 없기에 역사의 불완전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속해 있는 교회와 분리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와의 일치에로 이끄는 데 있어서 맡은 교회의 역할을 상대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