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총론-그리스도에 의한 성사의 제정

 



5.2.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의 제정




성사의 제정, 설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다양하게 규정되고 설명되었다. 우선 역사상의 여러가지 설명의 형태를 살펴본 후 현대 신학자들의 견해을 보자.




5.2.1.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 제정에 대한 역사적 견해들


고대교회의 교부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 제정에 대해서 신비적, 상징적으로 설명하였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노는 구원사건이 완성된 십자가에서 성사들이 (세례와 성체성사)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요한 19,34 (“예수께 가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잠들었을 때…그는 아담에게서 예시된 것을 완성하였다. 즉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에게서 갈비뼈 하나가 빼내져서 에와가 만들어졌다(창세 2,21;2,2). 바로 이와같은 것이 주님께서 일어났는데, 그가 십자가 상에서 잠들어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요한 19,34) 그 옆구리에서 성사들이 흘러나왔고, 이로 인해서 교회가 생겨났다. 에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생겨났듯이 교회도 주님의 배우자로서 그의 옆구리에서 생겨났다”.1)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부들의 신비적, 상징적인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법률제정에 비유해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하나의 법은 법제정자가 명시적으로 제정하였을 때 효력이 있듯이 성사들도 – 적어도 그 본질적인 부분들만이라도 – 하느님 혹은 神人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였을 때 그 효력이 인정된다.2) 그러나 여러 성사들이 기록된 하느님 말씀인 성서에 증언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이 제정자로부터 왔다는 정당성을 확립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한다. 이에 대해 토마스는 1고린 11,34에 의거해서 사도들로부터 오는 기록되지 않은 전통이 있다는 데에 근거를 둔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에 의한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해 언급한 말미에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가서 일러 드리겠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토마스는 여기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대리자로써 말하고 있으며, 신인 그리스도의 구전 명령을 듣고서 다른 성사에 대한 하느님의 지시를 전하였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


토마스와 동시대 신학자인 보나벤뚜라는 성사 “설립”(institutio)의 세 時期를 얘기한다: 첫째는 부활 이전의 예수에 의한 표지의 설정, 둘째는 예수의 죽음을 통한 성사 효력의 부여, 셋째는 사도들을 통한 공포이다. 즉 보나벤뚜라에 의하면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 설립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서의 말씀들을 교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사제정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서 “기록되지 않은 전통“을 근거로 얘기하는 것을 반대하고, 오직 성서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서적으로 분명히 증언된 예수의 ‘설립의 말씀’, 혹은 ‘약속의 말씀’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에 근거하지 못하는 성사들은 아무리 수백년 동안 교회의 전통 속에서 실천됐다고 해도 ‘거짓 성사’들로써 판정되야 하며 성사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혁자들의 입장이었다. 이런 비판을 근거로 그들은 견진, 고해, 병자, 혼배, 성품성사를 그리스도의 성사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초기에 고해성사를 인정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칼빈은 교회 직무를 맡기는 서품을 성사로서 인정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주장에 반대해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7성사 모두, 그리고 오직 7성사만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립됐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는 성사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말할 뿐 그 규정이 자세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그리스도께서 성사를 질료와 형상까지 포함해서 세부적으로 설정했느냐, 아니면 그저 일반적으로 설정했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모랭(Morin +1659)이란 불란서의 신학자는 그리스도께서 성사를 설정하시되 일반적으로(in genere) 하셨고, 나머지 세부적인 규정, 즉 무엇이 성사의 형상이요 질료인지는 교회에 맡겼다고 주장하였는데, 많은 이들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학설을 따랐다.




5.4.2. 현대의 학설들


라너는 교회를 “원성사”라고 규정하는 자신의 이론을 근거로 성사 제정 문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사변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성사경륜에 있어 세 단계의 성사성을 가정한다. 라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최종적 은총을 성사적으로 드러내는 원말씀”이고, 교회는 이런 그리스도의 “원성사”이며, 칠성사는 원성사인 교회의 “자기 실현”이다4).


이런 전제 하에 라너는 다음과 같은 규정한다: “교회가 인간을 위해 절대적으로 관여하면서 자신의 근본 행동들 중의 하나를 실현하는 곳, 즉 교회가 개개인의 결정적인 구원의 상황들을 대하면서 은총의 원성사라는 자기 본질을 온전히 실현하는 곳에 하나의 성사가 형성된다”.5)


이렇게 볼 때 성사 제정에 관한 문제는 예식의 차원에서 교회론의 차원으로 옮겨진다. 말하자면 교회가 실천하는 일곱 가지 “근본적 행동들”을 그리스도의 성사로 규정하지 위해서는 존재론적으로 “성사들의 원천점”6)인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세우셨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라너는 “성사의 제정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원성사라는 특성과 함께 세우셨다는 것에서 간단히 결론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7) 라너에게 그리스도에 의한 교회의 제정은 동시에 성사의 일괄적인 제정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개개의 성사에 대한 ‘제정의 말씀’를 찾아야하는 어려움을 그 이론 차체로 간단히 해결한다.8) 또 모든 성사 예식의 기원을 사도적 교회에 두어야 할 필요도 없게 만든다. 예를 들면 혼인과 성품성사는 사도시대가 훨씬 지난 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라너의 이론에 의하면 그렇다고 해서 그 성사들의 정당성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이 성사들이 특정한 시간 이후로는 인간의 결정적인 구원의 상황에서 은총의 표지로써의 교회의 자기실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라너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교회가 항상 성사의 실행 방식, 발전, 변형을 규정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다. 그에 의하면 성사 수의 규정 자체도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 현존의 지속을 의미하는 교회의 권한에 놓여있다.9)


라너의 신학이 현대의 성사 신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성사 제정에 관한 역사적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해서 과연 존재론적 – 신학적 논거를 통해서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있을까? 법적으로 엄밀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성사의 제정에 관해 언급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역사 비판적 성서주석학의 영향으로 예수께서 교회를 설립하셨다는 것을 이전처럼 마태 16장18장 한 구절에 근거해서 논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마태 16,18을 예수 자신의 말씀이라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는 교회 설립을 예수의 말씀 한마디에 근거지우려는 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교회가 점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설립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예수의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서 시작하여 그의 죽음과 부활을 거쳐 성령강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것이다.10) 예수께서 성사를 제정하셨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성사의 제정을 법적으로 정확하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시작하여 교회의 역사 과정에서 종결된 것으로 본다.


세례- 예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마르 1,9), 이는 세례를 하느님 나라의 입문의 예식으로 정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간접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성령 강림 직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세례를 받은(사도 2,42) 이래로 세례는 교회의 입문 예식이 된다.


견진 –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후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왔다(마르 1,10). 제자들 또한 성령 강림 때 성령을 받고(사도 2,1-2), 안수를 통해 성령을 전하였다(사도 8,17). 고대교회에서는 세례와 견진이 하나의 성사였으나 사회적, 역사적 이유에서 차차 두 개의 성사로 분리되었다.


성체 – 예수께서는 공생활 중에 식사공동체를 반복해서 이루셨고,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특별한 형태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셨다.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런 식사 공동체를 계속 거행하였고, 그들에게 “빵을 나누는” 예식이 가장 중심적인 행동이었다(사도 2,42.46).


고해 – 예수께서는 당신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다(마르 2,10)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말씀(마르 2,5; 루가 7,48)이나 행동(식탁의 공동체)을 통해서 직접 죄인들을 용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를 사하는 권한을 부여하셨고(요한 20,22-23),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 서로 죄를 용서하도록 권고하였다(골로 3,13). 이렇게 예수와 함께 시작된 죄사함은 교회의 역사 과정에서 차츰 고정적인 형태로 정형화된다.


병자 – 예수께서는 자주 병자들을 고쳐주셨는데, 기름을 발라 주시기도 했다(마르 6,13).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의 원로들이 병자를 방문해서 기름을 바르고 안수를 하며 기도해주었다(야고 5,14).


혼배 –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시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셨다. 또 한번 맺은 혼인은 결코 풀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0,2-12). 이런 점을 보아서 예수께서는 혼인을 특별한 위치에 놓으셨다고할 수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비유함으로써 결혼의 품격을 높였다(에페 5,21-33).


성품 –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는 열두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루가 22,19)라는 위탁의 말씀을 남기셨다. 초대 교회에서도 안수를 통하여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었는데(사도 13,103; 14,23; 1디모 4,14; 5,22), 이들은 성찬례(미사)도 거행하였다고 추정된다.




스킬러벡스는 이렇게 예수에게서 성사의 역사적인 근거를 찾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사의 “핵심”과 “표현 형태”를 구분하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단지 “성사적 표징의 핵심”11), 말하자면 성사적 표징이 의미하는 은총만을 규정하였다. 이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거나 그저 간접적인 행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사의 핵심을 “질료”, “형상”, “요소”, “말씀” 등을 사용해서 표현하는 것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은 하느님이 원하신 자유 속에서,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이 원하신 한계 내에서 성사의 표현 양식을 교회의 실천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예식 형태로 완성시켰다. 현재의 성사 예식의 형태가 예수가 핵심적으로 정한 것에 혹은 스스로 실천한 것에 상응하는 한 그리스도교의 살아있는 전통의 정당한 일부분이 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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