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1-5 ;하느님의 선택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바오로와 이스라엘

(하느님의 선택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1. 말씀읽기: 로마서9,1-5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얻게 된 것으로, 믿는 이들에게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받게 되는 구원을 믿음으로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제가 율법을 지켰으니 당연히 주십시오.”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동족인 유다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아가 구원을 거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가슴 아파 합니다. 그래서 동족인 유다인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유다인들이 바오로 사도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주변의 비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하고 있는지를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족의 구원 문제로 걱정하면서 슬픔하고 괴로워합니다. 동족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받을 하느님의 심판을 자신이 대신 받을 용의가 있을 만큼 유다인들을 걱정하였습니다. 그 걱정을 진심에 담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진심을 이야기하기 위해 두 분을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구약의 전통에 따라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확정짓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참조: 신명19,15).



또한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하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관입니다. 즉, 말하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신데, 그 성령께서 내 양심을 통하여 증언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바오로 사도가 하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안에 자리 잡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슬픔이 되어 바오로 사도 안에 자리 잡혀 있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른 동족들의 죄를 생각하니 더더욱 큰 고통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고 바리사이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기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먼저 동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족들은 오히려 바오로 사도를“배반자”로 여기고 그를 박해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지만 “혈족인 동포들”과는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포를 하여도 “혈족인 동포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포들을 위해서라면”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유다인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파문당하여 교회 안에서 쫓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 안에서 바오로 사도는 동족(유다인들)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동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집트인을 죽이고 결국 왕자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였던 것을 기억해 본다면,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은 지극한 유다인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염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은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이름1)이고, 이스라엘 사람은 야곱의 자손으로서 하느님께 선택을 받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특권들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규정과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총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처음 부여받은 이들은 유다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 맏아들2)이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들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시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당신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홍해바다를 마른 발로 건너게 하시며, 광야에서의 삶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며,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여러 계약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계약을 말합니다. 노아와 맺으신 계약3),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4), 이사악과 맺으신 계약5), 야곱과 맺으신 계약, 모세와 맺으신 계약6), 다윗과 맺으신 계약7)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주신 규정입니다. 이 율법은 하느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을 한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았을 때,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까요? 그리고 다른 백성에게는 없는 것을 받았다는 그 기쁨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이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알리셨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백성들은 기쁘게 율법을 지켰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율법은 사랑과 믿음이 빠져 나가고 형식과 규정들만 남아 있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완성하셔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배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경신례로서, 참된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헛된 것들에게 바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지만,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은 참된 경신례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공적인 예배를 “전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는 이들로,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이들이고, 하느님만을 섬기는 이들입니다.



여러 약속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 다윗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며, 당신이 하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약속 안에서 복을 받은 성조들의 후손들입니다. “조상들”은 영광스러운 호칭으로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의 후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조상들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말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말이 안 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외면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해 주신 약속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다인들이 배척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 받으실 분이십니다.”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르심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아 뵈었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수고와 모욕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있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① 바오로 사도의 고뇌는 무엇입니까? 내가 만일 바오로 사도였다면 나를 박해하고 모욕하는 동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사랑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켜 놓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내가 체험한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미분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