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성사의 역사, 고백성사, 고해성사

 

1.참회성사의 역사


고해성사에 대한 신학적 작업은 뒤늦게 이루어졌다. 대개 12-3세기 경 시작되었으며, 개별고백이 정착될 시기에 집중적인 연구가 비로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역사적 발전 과정을 신학적으로 탐구하기는 어렵다.




1.1. 참회성사의 성사성에 대한 견해


  1.1.1. 비가톨릭 신학자, 역사학자들의 견해


  고해성사는 예수의 분명한 원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성인들의 교회라고 생각했기에 성세성사의 참회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 다음의 다른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중죄나 공개된 죄에 대해서는 추방시킴으로써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서 추방과 같은 엄격주의도 사라졌다고 본다.


또한 교회의 공식적 참회가 모든 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2세기 중엽 교회는 뉘우친 죄인에게 교회와의 충만한 일치를 이루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교, 살인, 간음같은 죄는 그러한 용서에서 제외시켰었다. 3세기 초엽 다시 이런 규정이 완화되어 갈리스 교황은 간음한 죄인에게도 화해의 기회를 주었다. 또 3세기 중엽 배교자들에게도 화해가 주어졌다. 4세기에는 살인죄에까지도 화해가 허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참회규율은 참된 성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과의 화해보다는 교회와의 화해를 강조하고 이루어주기 때문이다.


  


  1.1.2. 가톨릭 신학자, 역사학자들의 견해


  가톨릭계 학자들은 신약성서에 근거하여 교회의 근원에서부터 고해성사를 탐구하였다. 1-2세기에서 3세기까지는 사목적 이유 때문에, 즉 그리스도인의 태만함을 피하기 위해 중죄에 대해 용서해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톨릭계 다른 학자들은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와 용서를 해주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역사 안에서 지역에 따라, 또는 어떤 주교가 지역의 사목적 배려나 신학적 사상 때문에 중죄에 대해 용서를 안주었다고 본다.


가톨릭계 역사가들의 주장은 초기교회에서 개별적 고백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개별고백은 6세기 경부터 널리 퍼졌다. 하지만 Morin(1651)은 공적인 참회는 세 가지 죄 – 배교, 간음, 살인 – 에만 유보되어 있었고, 다른 죄에 있어서도 사적인, 개별적인 참회예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옛날 초기교회의 참회형식과 오늘날의 참회형식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1.2. 6세기까지의 고백성사


  1.2.1. 참회의 대상 : 교회의 공식적 참회를 받아야 하는 죄들


  그리스도의 몸에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중한 죄들은 예외없이 교회법적, 공식적 참회에 종속되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대죄 또는 윤리적 죽을 죄 등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죄, 즉 가벼운 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 단식, 애긍, 선한 업적 등을 통해 용서되었다. 따라서 이런 것은 개별적 참회로써 성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기도와 선한 업적은 주로 영신지도자들의 충고와 인도로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 대죄와 소죄의 엄격한 구분이 시작되었는데, 2세기 중엽까지 신약성서를 고려해서 볼 때 교회의 공식적 참회에 종속된 죄(대죄)로는 살인, 우상숭배, 간음, 동성연애, 욕정에 사로잡힘, 도둑질, 사기 등이 포함되고, 6세기에는 특히 십계명을 거스리는 죄와 현실적 중한 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죄 그리고 작은 죄의 축적에 따른 죄 등은 교회의 공적 참회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2.2. 참회예절


  초세기에 주교에 의해 공동체의 공식적인 참회가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로마의 끌레멘스의 「고린토인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그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 의하면 이교도들도 뉘우치면 교회 공동체와 화해가 가능했고, 교회의 일치 속에 받아들여졌다고 증언된다. 이레네오(190-200)와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 역시 간음한 사람, 배교자, 살인자들도 교회의 공식적 참회에 종속된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교회의 공식적 참회전례는 3세기 경 정착되며 점차 강조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4-6세기 경에 3세기의 공식 참회예절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예식들이 추가되어 구체화되고 조직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Ancira 공의회(314), Nicea 공의회(325), Antiochia 공의회의 참회예절에 대한 결정사항들이 규범화되었다.




   1.2.2.1. 참회 안수 : 참회 공동체에의 입문


   일반적으로 장로나 주교에 의해 이루어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제의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즉 주교는 어떤 죄인이 공식적인 참회예절에 들어가도록 결정한 것으로 확인된다. 만약 죄인이 참회를 거절하면 주교는 공동체와의 격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죄가 아주 공개적이 아니고, 실제 죄인 스스로도 공개적 참회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모를 때는 주교에게 가서 그의 판단을 받았다. 그 결과 어떤 주교에 따라서, 또는 어떤 지역에 따라서 참회 기간이라든지 다른 규정들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죄인들은 집단으로 참회공동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목적은 죄인이 범죄함으로써 교회와의 충만한 일치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게 해주고, 보다 효과적으로 참회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또한 모든 공동체에게 죄인 형제가 참회예절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도와주고 기도해 줄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죄를 직접 고백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참회예식의 무리 안에 들어간 것 자체로 그 자신이 죄인임을 드러내 주기에 구체적인 죄를 밝히도록 요구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체적인 죄를 밝히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러한 예절은 주교의 안수를 포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수를 하고 참회복을 입힌 뒤 상징적으로 교회에서 내쫓았다. 그래서 참회자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방법에 있어서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도 있었다. 블란서의 경우 참회자에게 삭발을 요구했고, 스페인에서는 머리나 수염을 깎지 못하게 하였다.




   1.2.2.2. 참회행위(Actio poenitentiae)1)


   참회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교회와 다시 일치하기 위해 선한 일 등을 해야했다. 개인적으로는 엄격한 단식을 지키고, 침대 위에 재를 뿌리고 자며, 눈물과 기도로 생활하며, 목욕을 삼가해야 했다. 또 공개적으로는 신자들의 기도를 청하며 참회복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참회행위는 주로 교회 문 밖에서 이루어졌다. 그후 단계별로 교회 안으로 점진적으로 영성체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이같은 참회자에게 부과되는 의무로는 세 가지가 있다.


① 일반적 의무 : 참회자는 고통스런 삶, 즉 극기를 실천해야 한다. 단식재를 지키고, 애긍하며 회개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다.


② 예절적 의무 : 특별한 예식이 준비되었다. 사순절 동안 장로나 주교들로부터 참회예절의 안수를 받았고, 축일이나 대축일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할 때는 장례미사시 죽은 이를 운구하고 안치하는 행위를 도맡아 했다.


③ 금지된 사항 : 참회기간 중에는 군복무에서 면제되었다. 또한 공적인 일, 즉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을 하거나, 성직품을 받는 것 등은 금지되었다. 참회 이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동안 금지되는 사항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결혼한 부부의 경우 화해 후에도 일생동안 부부생활이 금지되었다. 또 미혼자의 경우 참회예절에 들어오면 완전한 화해를 이룬 후에야 결혼이 허가되었다. 그런데 이 기간이 2-30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임종자에게는 어떤 단계에 있든지 즉시 화해를 시켜주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임종자에게 너무 빨리 화해를 해준다고 주교들이 지적하기도 했다.




   1.2.2.3. 화해(Absolutio poenitentiae)


   참회의 마지막 시기에 교회는 장엄한 전례 예절을 통해 죄인과 교회와의 화해를 이루어 주었다. 우선 전체 공동체가 교회밖에서 참회자들을 제단으로 인도하고, 회개자가 공동체의 기도를 간청하며 주교에게 화해를 청하면, 주교는 그들에 대한 훈계를 하고 안수를 해주며 화해의 기도를 바친다. 여기서 안수는 교회의 성령인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와 완전히 재일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체 예절은 5세기 경부터 성금요일날 거행하는 것으로 고정되었다. 물론 죽을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는 예외였다.




  1.2.3. 중세기 교회적 참회의 세 가지 형태


  교회의 공식적 참회의 기본 원칙은 공개적인 죄의 경우 공개적인 참회를, 그리고 개인적인 사소한 죄의 경우 개인적인 참회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공개적인 중죄의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점차 사적 고해가 강조되었다. 그래서 12세기 말 경 라틴 교회 안에서 참회의 여러 종류에 대한 것이 재조직되고, 그 결과 세 가지 형태의 참회전례가 등장하였다.


  첫째는 공개적이고 장엄한 것, 둘째는 공개적이지만 장엄하지 않은 것, 셋째는 개별적인 고백이다. 공개적이고 장엄하지 않은 것은 주로 성지순례와 동일시되었다. 즉 고백을 들을 주임사제가 단순한 예절을 거행하고 성지순례의 참회행위를 지정해준다. 그래서 참회 순례자들은 보통 단체로 행동하였다. 이렇듯 스캔들 자체가 그리 크지 않고 공개적이지 않을 경우 성지순례로 대치되었고, 특히 성직자들이 잘못한 경우 공개적인 참회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지순례가 부여되었다. 그런데 후에 순례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죄를 범한 성직자들이었다. 따라서 성지순례 여행 자체가 교회의 스캔들을 표시하였고 또 다른 스캔들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교황이 개입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신약성서 안에서 하느님 백성인 죄인의 회개와 화해에 대한 결론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교회가 뉘우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책임과 사명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죄인이 회개하는 형태를 볼 수 있는 있는데, 여기에는 정상적 방법과 장엄한 고백의 형태가 있다. 정상적 방법이란 형제적 교정과 기도 그리고 형제에게 하는 고백 등이고, 장엄한 고백의 형태란 무겁고 공개적인 죄의 경우 공동체의 부패를 방지하고, 죄인을 회개로 인도하기 위해 취한 격리 등을 말한다. 여기서 참회적 실천은 공동체의 우두머리의 개입과 함께 공동체로부터 행사되었다. 이러한 참회적 실천은 마태 16,19; 18,18.;20,22-23에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의 회개와 화해를 위한 성세성사가 아닌 오히려 그것과는 구별되는 기존 그리스도인 죄인의 회개와 화해를 위한 성사를 예수께서 원하셨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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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성사의 역사, 고백성사, 고해성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참회성사의 역사

    고해성사에 대한 신학적 작업은 뒤늦게 이루어졌다. 대개 12-3세기 경 시작되었으며, 개별고백이 정착될 시기에 집중적인 연구가 비로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역사적 발전 과정을 신학적으로 탐구하기는 어렵다.


    1.1. 참회성사의 성사성에 대한 견해

      1.1.1. 비가톨릭 신학자, 역사학자들의 견해

      고해성사는 예수의 분명한 원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성인들의 교회라고 생각했기에 성세성사의 참회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 다음의 다른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중죄나 공개된 죄에 대해서는 추방시킴으로써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서 추방과 같은 엄격주의도 사라졌다고 본다.

    또한 교회의 공식적 참회가 모든 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2세기 중엽 교회는 뉘우친 죄인에게 교회와의 충만한 일치를 이루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교, 살인, 간음같은 죄는 그러한 용서에서 제외시켰었다. 3세기 초엽 다시 이런 규정이 완화되어 갈리스 교황은 간음한 죄인에게도 화해의 기회를 주었다. 또 3세기 중엽 배교자들에게도 화해가 주어졌다. 4세기에는 살인죄에까지도 화해가 허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참회규율은 참된 성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과의 화해보다는 교회와의 화해를 강조하고 이루어주기 때문이다.

      

      1.1.2. 가톨릭 신학자, 역사학자들의 견해

      가톨릭계 학자들은 신약성서에 근거하여 교회의 근원에서부터 고해성사를 탐구하였다. 1-2세기에서 3세기까지는 사목적 이유 때문에, 즉 그리스도인의 태만함을 피하기 위해 중죄에 대해 용서해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톨릭계 다른 학자들은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와 용서를 해주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역사 안에서 지역에 따라, 또는 어떤 주교가 지역의 사목적 배려나 신학적 사상 때문에 중죄에 대해 용서를 안주었다고 본다.

    가톨릭계 역사가들의 주장은 초기교회에서 개별적 고백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개별고백은 6세기 경부터 널리 퍼졌다. 하지만 Morin(1651)은 공적인 참회는 세 가지 죄 – 배교, 간음, 살인 – 에만 유보되어 있었고, 다른 죄에 있어서도 사적인, 개별적인 참회예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옛날 초기교회의 참회형식과 오늘날의 참회형식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1.2. 6세기까지의 고백성사

      1.2.1. 참회의 대상 : 교회의 공식적 참회를 받아야 하는 죄들

      그리스도의 몸에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중한 죄들은 예외없이 교회법적, 공식적 참회에 종속되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대죄 또는 윤리적 죽을 죄 등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죄, 즉 가벼운 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 단식, 애긍, 선한 업적 등을 통해 용서되었다. 따라서 이런 것은 개별적 참회로써 성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기도와 선한 업적은 주로 영신지도자들의 충고와 인도로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 대죄와 소죄의 엄격한 구분이 시작되었는데, 2세기 중엽까지 신약성서를 고려해서 볼 때 교회의 공식적 참회에 종속된 죄(대죄)로는 살인, 우상숭배, 간음, 동성연애, 욕정에 사로잡힘, 도둑질, 사기 등이 포함되고, 6세기에는 특히 십계명을 거스리는 죄와 현실적 중한 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죄 그리고 작은 죄의 축적에 따른 죄 등은 교회의 공적 참회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2.2. 참회예절

      초세기에 주교에 의해 공동체의 공식적인 참회가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로마의 끌레멘스의 「고린토인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그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 의하면 이교도들도 뉘우치면 교회 공동체와 화해가 가능했고, 교회의 일치 속에 받아들여졌다고 증언된다. 이레네오(190-200)와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 역시 간음한 사람, 배교자, 살인자들도 교회의 공식적 참회에 종속된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교회의 공식적 참회전례는 3세기 경 정착되며 점차 강조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4-6세기 경에 3세기의 공식 참회예절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예식들이 추가되어 구체화되고 조직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Ancira 공의회(314), Nicea 공의회(325), Antiochia 공의회의 참회예절에 대한 결정사항들이 규범화되었다.


       1.2.2.1. 참회 안수 : 참회 공동체에의 입문

       일반적으로 장로나 주교에 의해 이루어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제의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즉 주교는 어떤 죄인이 공식적인 참회예절에 들어가도록 결정한 것으로 확인된다. 만약 죄인이 참회를 거절하면 주교는 공동체와의 격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죄가 아주 공개적이 아니고, 실제 죄인 스스로도 공개적 참회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모를 때는 주교에게 가서 그의 판단을 받았다. 그 결과 어떤 주교에 따라서, 또는 어떤 지역에 따라서 참회 기간이라든지 다른 규정들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죄인들은 집단으로 참회공동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목적은 죄인이 범죄함으로써 교회와의 충만한 일치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게 해주고, 보다 효과적으로 참회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또한 모든 공동체에게 죄인 형제가 참회예절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도와주고 기도해 줄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죄를 직접 고백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참회예식의 무리 안에 들어간 것 자체로 그 자신이 죄인임을 드러내 주기에 구체적인 죄를 밝히도록 요구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체적인 죄를 밝히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러한 예절은 주교의 안수를 포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수를 하고 참회복을 입힌 뒤 상징적으로 교회에서 내쫓았다. 그래서 참회자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방법에 있어서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도 있었다. 블란서의 경우 참회자에게 삭발을 요구했고, 스페인에서는 머리나 수염을 깎지 못하게 하였다.


       1.2.2.2. 참회행위(Actio poenitentiae)1)

       참회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교회와 다시 일치하기 위해 선한 일 등을 해야했다. 개인적으로는 엄격한 단식을 지키고, 침대 위에 재를 뿌리고 자며, 눈물과 기도로 생활하며, 목욕을 삼가해야 했다. 또 공개적으로는 신자들의 기도를 청하며 참회복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참회행위는 주로 교회 문 밖에서 이루어졌다. 그후 단계별로 교회 안으로 점진적으로 영성체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이같은 참회자에게 부과되는 의무로는 세 가지가 있다.

    ① 일반적 의무 : 참회자는 고통스런 삶, 즉 극기를 실천해야 한다. 단식재를 지키고, 애긍하며 회개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다.

    ② 예절적 의무 : 특별한 예식이 준비되었다. 사순절 동안 장로나 주교들로부터 참회예절의 안수를 받았고, 축일이나 대축일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할 때는 장례미사시 죽은 이를 운구하고 안치하는 행위를 도맡아 했다.

    ③ 금지된 사항 : 참회기간 중에는 군복무에서 면제되었다. 또한 공적인 일, 즉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을 하거나, 성직품을 받는 것 등은 금지되었다. 참회 이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동안 금지되는 사항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결혼한 부부의 경우 화해 후에도 일생동안 부부생활이 금지되었다. 또 미혼자의 경우 참회예절에 들어오면 완전한 화해를 이룬 후에야 결혼이 허가되었다. 그런데 이 기간이 2-30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임종자에게는 어떤 단계에 있든지 즉시 화해를 시켜주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임종자에게 너무 빨리 화해를 해준다고 주교들이 지적하기도 했다.


       1.2.2.3. 화해(Absolutio poenitentiae)

       참회의 마지막 시기에 교회는 장엄한 전례 예절을 통해 죄인과 교회와의 화해를 이루어 주었다. 우선 전체 공동체가 교회밖에서 참회자들을 제단으로 인도하고, 회개자가 공동체의 기도를 간청하며 주교에게 화해를 청하면, 주교는 그들에 대한 훈계를 하고 안수를 해주며 화해의 기도를 바친다. 여기서 안수는 교회의 성령인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와 완전히 재일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체 예절은 5세기 경부터 성금요일날 거행하는 것으로 고정되었다. 물론 죽을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는 예외였다.


      1.2.3. 중세기 교회적 참회의 세 가지 형태

      교회의 공식적 참회의 기본 원칙은 공개적인 죄의 경우 공개적인 참회를, 그리고 개인적인 사소한 죄의 경우 개인적인 참회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공개적인 중죄의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점차 사적 고해가 강조되었다. 그래서 12세기 말 경 라틴 교회 안에서 참회의 여러 종류에 대한 것이 재조직되고, 그 결과 세 가지 형태의 참회전례가 등장하였다.

      첫째는 공개적이고 장엄한 것, 둘째는 공개적이지만 장엄하지 않은 것, 셋째는 개별적인 고백이다. 공개적이고 장엄하지 않은 것은 주로 성지순례와 동일시되었다. 즉 고백을 들을 주임사제가 단순한 예절을 거행하고 성지순례의 참회행위를 지정해준다. 그래서 참회 순례자들은 보통 단체로 행동하였다. 이렇듯 스캔들 자체가 그리 크지 않고 공개적이지 않을 경우 성지순례로 대치되었고, 특히 성직자들이 잘못한 경우 공개적인 참회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지순례가 부여되었다. 그런데 후에 순례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죄를 범한 성직자들이었다. 따라서 성지순례 여행 자체가 교회의 스캔들을 표시하였고 또 다른 스캔들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교황이 개입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신약성서 안에서 하느님 백성인 죄인의 회개와 화해에 대한 결론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교회가 뉘우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책임과 사명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죄인이 회개하는 형태를 볼 수 있는 있는데, 여기에는 정상적 방법과 장엄한 고백의 형태가 있다. 정상적 방법이란 형제적 교정과 기도 그리고 형제에게 하는 고백 등이고, 장엄한 고백의 형태란 무겁고 공개적인 죄의 경우 공동체의 부패를 방지하고, 죄인을 회개로 인도하기 위해 취한 격리 등을 말한다. 여기서 참회적 실천은 공동체의 우두머리의 개입과 함께 공동체로부터 행사되었다. 이러한 참회적 실천은 마태 16,19; 18,18.;20,22-23에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의 회개와 화해를 위한 성세성사가 아닌 오히려 그것과는 구별되는 기존 그리스도인 죄인의 회개와 화해를 위한 성사를 예수께서 원하셨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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