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와 겸손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힘을 얻을 때는 형제자매들의 사랑과 격려 입니다. 그리고 큰 괴로움을 겪을 때는 형제자매들의 무관심과 다양한 폭력입니다. 결국 형제자매들이 나를 기쁘게도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나를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기쁨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근심거리와 고통이 되어 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겸손과 순종을 본받을 때, 그래서 주님의 삶을 내 삶으로 만들어갈 때,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공동체와 함께 일치하고 공동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래서 주님을 닮읍시다.
또한 2,6-11절은 바로 그 유명한 “그리스도 찬미가”입니다. 당신을 낮추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본받을 때, 공동체는 일치와 겸손으로 서로 섬기며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고,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뜻을 같이 하는 삶, 그 삶이 바로 신앙인들을 기쁘게 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기심이나 허영심을 버리고,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이고, 그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내 삶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지지해 주고 계시고, 나를 이끌고 계시다는 체험입니다. 이 체험은 신앙인들이 가진 정서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주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으며, 주님의 사랑을 받기에 나 또한 사랑을 베풀고, 주님의 자비를 언제나 체험하고 있기에 형제자매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신앙인들은 한 마음이 될 수 있고, 같은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신앙인의 공명).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뜻을 같이하고, 주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그 사랑 안에 살기에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을 기쁘게 지킵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기뻐합니다.
①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 체험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비록 어려운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보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가끔은 분심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눔의 삶을 살아가면서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하는가?”하고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역경 안에서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지나!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록 이런 현실에 처해진다 할지라도 주님의 격려와 사랑에 찬 위로를 받게 된다면 모든 근심걱정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더 못해 드려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해합니다.
주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 자녀들을 격려하시고, 사랑에 찬 위로를 전하십니다.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형제자매의 손길로 사랑에 찬 위로를 전하기도 하시며, 성사의 은총으로, 기도의 응답으로 전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격려와 사랑에 찬 위로를 주시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격려와 위로를 주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언제나 준비해 주심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격려에 격려를 더해서 받고, 위로에 위로를 더해서 충만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②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누는 것.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할 수 있는 이들은 오직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신앙인이야 말로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고, 일치를 원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갈 때, 나는 내 형제자매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며, 주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며,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③ 뜻을 같이하는 것.1)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이들이고, 주님의 격려와 사랑 안에 머무는 이들이며,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마음을 가진 이들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이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을 형제자매라 부르며 그들과 함께 뜯을 같이하여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뜻을 같이한다는 것은 “내 뜻이 공동체와 맞지 않는다면 내 뜻을 버림”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바란다면 나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며 매일 세 번 삼종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④ 같은 사랑을 지니는 것.
신앙인들은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을 주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받은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 사랑을 전해주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이 불타올라 그 열정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대로 내 형제자매들에게 해 주며,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려 합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대려 하며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슴 깊은 곳에 주님의 사랑이 불타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사랑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서로 함께하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전하기 위해 병자를 돌보고, 냉담자들을 찾아보며,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레지오나 구역반모임등도 같은 사랑을 지닌 이들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인 것입니다.
⑤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는 것.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여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신앙인들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이들이기에 주님 영광을 위하여 함께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미사에 참례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고, 함께 봉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려고 합니다. 내가 나서도 되지 않을 자리에는 나서지 않고, 형제자매의 말에 따라야 할 때는 기쁘고 겸손하게 따라줍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비난이나 비방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기쁘게 해 나갑니다. 또한 이 기쁨 안에 머무는 이들은 목자를 기쁘게 하고, 함께 하는 형제자매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삶을 통하여 자기 자신도 기뻐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다보면 갈등이 일어납니다. 필리피 교회 공동체 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본적인 품성을 인정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겸손과 자기희생과 온전한 사랑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살아갈 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애정과 동정을 나누면서 살아갈 때, 공동체는 분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필리피 교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바오로 사도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고, 이러한 삶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나서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보다 잘하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려 하고, 더 나아가 비난이나 비방까지 서슴없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자기 자신마저 파멸시킵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대해야 합니다. 교만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나게 하고, 이기심은 질투에 눈이 멀게 하며, 허영심은 멸망을 끌어당김을 알아야 합니다.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성당 일에 간섭하기를 너무 좋아했고, 비신자들에게는 마치 자신이 성당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 단체, 저 단체, 이 모임, 저 모임을 거치면서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은 가슴 조이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안아 주려고 했습니다. 신부님께서도 그 모습이 안타까워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자매에게 조언을 했지만, 그 조언이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이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꾸지 못한 그녀가 바뀌게 된 것은 그녀의 남편 덕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비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제가 성당에 나와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자기 뒤에 있게 했습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하게 했고, 나서는 일이 아니라 뒤에서 따라주는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 자매는 그렇게 언제나 성당에서는 남편과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마침내 그 자매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저것 간섭하는 일이 아니라 이것저것 말없이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자매는 신부님께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도 아침을 먹으면서 성당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얼굴빛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성당 갔다가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갔더니 거실 전체가 거울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울에는 가슴을 찌르는 말을 큰 글씨로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과 살고 싶으면 매일 거울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그녀의 눈치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변한 터라 그 자매도 놀랐습니다.
“나랑 살고 싶으면 매일 거울을 봐.”
그 자매도 “나랑 살고 싶으면 이 거울을 떼라.”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더 강하게 나왔습니다.
“당신 천당 가고 싶으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더 좋을 거야. 나도 바꿀 것이니까 당신도 삶의 방향을 바꿔.”
거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만 생각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잘난 체만 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의 모습이 거울 속에 있다. 바로 너다.”
결국 그 자매의 모습을 참다못한 남편이 그녀의 모습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기에 참고 살았지만, 공동체에게 잘못하는 자신의 배우자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아내가 따라서 할 수 있도록 몇 년을 노력한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만으로는 바뀌지 않기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삶을 바꿨던 것입니다.
그 자매는 지금도 기도를 하면서 거울을 봅니다. 그리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감사하고,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보속을 오늘도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공동체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기심과 허영심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려고 하며, 내 만족을 위해 일을 한다면” 자기 자신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분열되게 되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때, 서로를 존중하고, 형제를 위해 봉사할 수 있으며, 형제들을 존중하고, 형제들의 삶의 모범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부족한 형제자매들을 돌보며, 그들을 이끌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죄로 기울어진 형제자매들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여, 그들이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공동체를 사랑하고 모범을 보이며, 책임감 있게 봉사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막상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는 뒤로 물러나고 연락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 일을 뒤로 하고 먼저 공동체의 일을 돌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일이 있다면서요?” 하고 물으면 “제 일은 제가 시간을 만들어서 하면 됩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일은 함께 해야 하니까 이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기쁘게 봉사합니다. 형제자매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일을 하느님의 일로 생각하기에 먼저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께서는 그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2)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회 공동체에게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간직”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하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자비를 청하는 사람을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고,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결코 단죄하지 않으셨고, 어느 누구의 청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때리는 사람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십자가를 지우는 사람에게 등을 맡기셨으며, 못을 박는 사람들에게 손과 발을 내맡기셨고, 창으로 찌르는 사람에게 당신 옆구리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으면 자신의 것만을 보지 않고 상대방의 것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옆에 있는 그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나와 함께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봉사자들의 경우, 그 봉사 직무에서 물러나면 그 쪽 봉사에는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에 많이 했고, 또 전직 임원이 참여하면 새 임원들이 일을 못한다.”는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자신이 봉사할 때는 생각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또 그들의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직무에서 벗어났다 하여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손길을 외면한다면 그는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한 것이고, 형제자매들의 도움의 요청은 봉사가 아니라 일을 해 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거부하는 것입니다.3) 하지만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봉사라는 것을 알 때, 그는 기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들의 청을 한번도 외면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청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형제자매들의 모습으로 다가와 청하시는 예수님의 청을 외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처럼, 인간이 지닌 모든 나약함까지도” 모두 취하셨습니다. 그렇게 낮추시어 섬기러 오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라는 말씀과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겸손하게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알 수 있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얼마나 당신을 낮추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줍니다. 로마인들이 노예들에게만 집행하던 십자가 처형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절망이나 수치스러움, 죽음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지극한 사랑의 상징이고, 겸손과 섬김의 상징이며,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순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고통과 모욕과 유혹을 모두 물리치시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온전히 낮추시어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도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지면 겸손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부족한 봉사자라 할지라도 그의 말에 따라 주어야 하고, 내가 보기에 부족한 사제나 수도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말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겸손할 수 없고, 겸손하지 않으면 결코 순종할 수 없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께 영광 드릴 수 없게 됩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는 방법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께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렸고,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렇게 낮추셨지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들어 높이시고, 인간이 되시기 전의 이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즉 “주님”이라는 칭호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이십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이 너무 존귀하여 “야훼”라는 이름 대신에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이제 주님이라는 호칭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이고, 이 고백이 바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신 예수님 앞에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늘에 있는 모든 영적인 존재를 말하고, 땅 위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을 말하며, 땅 아래는 적은 이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참되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과 순종에 감사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낮추셨다면 나 또한 나를 낮추어야 하고, 주님께서 이렇게 겸손하게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다면 나 또한 이렇게 겸손하게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내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참된 따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봉사자들의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주님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큰 칭호가 주어집니다. 그 칭호는 바로 “형제님, 자매님”입니다. 봉사자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게 되고, 봉사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겸손하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공동체와 일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삶은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께서는 나를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공동체를 일치시키고, 성장시키는 이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그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성장을 방해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이고, 어떻게 분열시키고, 어떻게 방해합니까?
②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을 깊이 묵상해 보고, 예수님의 삶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③ 나는 공동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