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데레사의 영성- 에니어그램 , 성격유형

 

마더 데레사의 영성




유형이론은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와 같다. 유형이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며 또한 타인을 이해하는 안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니어그램이라는 유형이론 지도를 가지고 마더 데레사를 살펴보았다. 20세기 성녀라고 불리는 마더 데레사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 2유형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에니어그램 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는 앞에서 마더 데레사의 생애 중에서 어떤 생활이 그녀를 완성에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특별히 그녀가 20년을 보낸 로레토 봉쇄 수녀원은 그녀를 하느님 사랑의 깊은 체험에로 이끌었다. 마더 데레사는 이 하느님과의 내적 친밀을 통해 2유형들이 겪게 되는 ‘의존’, ‘이기심’, ‘불안’ 등의 강박행동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 여기서는 마더 데레사에 대한 분석을 넘어 그녀의 영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유형에 대한 앞의 작업을 전제로 한다면 마더 데레사의 영성은 더 깊은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녀의 영성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접근해 보기로 한다.




1. 버림받으신 예수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시게 해 주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에는 내게 입혀 주었다. 병들었을 때에 나를 찾아왔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내게로 와 주었다.”(마태 25,35-36)




마더 데레사의 영성에 있어 가장 특징적인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그녀의 탁월한 열성이 될 것이다. 그녀의 봉사의 삶은 버림받으신 예수와의 만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그녀의 활동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다.1) 그녀는 특별한 영성으로 사람들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았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려 노력했다. 먼저 그녀의 성소를 보도록 하자.




“저에게 성소란 예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저를 떼어놓을 수 없으리라는 확고한 신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매우 구체성을 띤 어떤 것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일 뿐입니다.”2)


“예수님은 나의 배우자입니다.3) 예수님은 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 중에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4)




이렇게 마더 데레사의 영성의 출발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이다. 이것은 2유형이 가지는 불안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답이다. 2유형의 불안은 ‘전적인 의존’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는 예수의 모습을 독특한 방법으로 발견한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해야 할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가야 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채워져야 할 배고픔입니다. 예수님은 옷 입혀져야 할 헐벗음입니다. 예수님은 치유되어야 할 병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상처를 씻어야 할 나병환자입니다. 예수님은 친밀하게 대해야 할 약물 중독자입니다.”5)




그러므로 마더 데레사와 그를 따르는 수녀들의 활동은 모든 것이 예수께 향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그들에게는 성(聖)과 속(俗)의 차별이 없다. 그들이 이룬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봉사활동을 통해 더 밝게 드러날 뿐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이 비록 길 건너 누군가를 돕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물을 주는 것조차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소한 가르침을 통해 작은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6)




마더 데레사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이 얼마나 버림받은 예수와 깊이 일치하려고 노력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특별히 마더 데레사의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사랑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도 이 일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사랑의 선교회 젊은 청원자들 중에 먼 나라에서 온 무척 부유한 가정 출신이 한 명 있었다. 그녀가 청원자들과 함께 임종자의 집으로 가기 전에 마더 데레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미사 중에 사제가 얼마나 주의 깊게 그리고 섬세하게 생명의 빵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는지 보셨나요? 임종자의 집에서도 그와 같이 하십시오”


세 시간 뒤 그들이 돌아왔다. 그 젊은 청원자는 도착하자마자 마더 데레사에게 달려가 기쁨 충만한 얼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 저는 세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몸을 만졌어요.”


그녀는 하수구에서 발견한 한 사람의 구더기 가득한 몸을 씻어 주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나는 아파요’라고 말할 때 그 청원자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7)




이렇게 그녀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에게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관심은 봉사활동과 함께 그들을 깊은 관상(觀想)에로 이끈다. 그들의 관상은 성당이나 감실에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바쁜 생활 중에서도 기도의 삶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상은 사도직 활동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남자나 여자나, 굶주린 그리스도께 먹을 것을 드리고, 헐벗은 그리스도께 입을 것을 드리는 사람이라고 진실로 믿는 이야말로 자기 가정, 자기 생활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서 관상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사랑의 선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하루 24시간 동안 세상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관상가라고 정의합니다. ”8)




마더 데레사가 강연이나 대화 중에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서 구절은 마태오 25장 40절의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예수와의 깊은 일치가 그녀의 봉사활동을 통해 어떻게 잘 드러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9)


그러므로 ‘무엇이 당신의 일을 수행하는 데 그런 큰 힘을 줍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마더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과 추방당한 이들의 괴로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의 감추어진 얼굴로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 마비된 사람, 나환우, 불구자, 고아와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지요.”10)



2.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




마더 데레사는 평생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랑의 바탕은 바로 하느님 사랑의 체험임을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사랑과 기도에 대해 언급하는 걸로 만족할 것이다.


먼저 그녀 자신이 사랑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영성의 특별함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상화된 신앙이다. 그녀에게 사랑과 믿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자선 행위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행위 속의 사랑이며 행위 속의 사랑은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고 만져야 합니다. 기도를 통한 행위 속의 믿음과 봉사를 통한 행위 속의 믿음은 같은 것이며 같은 사랑이며 같은 공감입니다.”11)




마더 데레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많은 활동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활동 이전에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하느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일은 많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느님이 찾으시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분을 닮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 받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12)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시다.13) 마더 데레사는 이러한 무한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침묵 속에서 듣는다. 외적인 실천과 함께 내면의 침묵은 그녀가 많은 활동 중에도 힘을 잃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14) 특별히 그녀에게 있어 내면의 침묵은 2유형의 한계를 뛰어 넘는 가장 성숙된 행위이다. 2유형은 인간관계에 의존하려는 경향 때문에 좀체 혼자 침묵 속에 머물지를 못한다.15) 그녀는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더 데레사에게 있어 기도는 사랑과 동의어가 된다. 그녀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이루었으며 스스로 기도하기를 사랑하였다.




“진정한 기도는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16)


“나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나는 그리스도와 사랑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나는 그분께 기도하는 것이 곧 그분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진정한 기도는 하나, 본질적인 기도는 하나만 있을 뿐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17)




3. 가난한 이들의 친구




완성된 2유형의 대표적인 미덕은 ‘봉사’이다.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마더 데레사의 영성은 곧장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봉사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에게 있어 버림받으신 예수는 바로 가난한 이들이다.18)




“가난한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한 이는 모두 예수님입니다. 그는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예수님인 것입니다. ‘사랑의 선교회’의 수도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마다 그것이 진정 예수님을 돕는 일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19)




그러므로 마더 데레사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성체와 연결된다. 마더 데레사는 성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과 봉사의 힘을 얻는다.




“우리는 성체와 가난한 이, 또 가난한 이와 성체를 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분께서 그분에 대한 나의 배고픔을 채워 주셨으므로 이제 나도 그분의 영혼에 대한 그분의 배고픔을, 사랑을 채워주러 갑니다. 우리의 성체가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우리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면 그 성체는 불완전한 것입니다.”20)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통찰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극심한 가난을 목격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 그녀는 절망하기 보다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특별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위엄과 삶에 대한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놀랄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자신의 위엄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존엄성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삶을 이끌어 나갈 놀라운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21)


“가난한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려운 일을 누구보다 잘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22)




그렇다면 과연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




“하느님께서는 결코 가난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23)


“우리의 가난은 진정한 복음적 가난이어야 합니다. 온유하고 부드럽고 즐겁고 마음을 열어놓는, 항상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복음적 가난입니다. 가난은 포기가 아닌 사랑입니다.”24)




그러므로 이 가난은 기쁨이요 자유가 된다.




“우리에게 가난은 기쁨입니다. 가난은 우리에게 자유입니다. 가난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아주 가까이 접근하게 하는 것입니다…가난은 자유입니다. 그것은 내가 소유한 것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자유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묶을 수 없는 자유입니다.”25)




가난에 대해 마더 데레사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결핍과 결여에 의한 가난이다. 한 차원은 물질적 및 물리적인 가난으로서 의식주 같은 일상 생활 용품들의 결핍을 지칭한다. 다른 차원은 정신적영적 가난으로 소외감, 고독, 이기주의, 윤리 의식의 결여,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결여이다. 전자의 가난은 물질적인 것이 충족될 때 쉽게 해결될 수 있으나 후자의 가난은 해결이 쉽지가 않다. 오늘날 사회의 심각성은 물질적 가난보다도 정신적영적 가난에 있다.26)




“서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당신네들은 영성적으로 가난한 사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며 그 가난은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영성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27)


“가난은 단순히 빵에 굶주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커다란 굶주림에 기인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 주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방치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적인 존엄성을 부인한 것이다.”28)




그렇다면 이러한 가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마더 데레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깨달음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을 뜻한다.




“우리의 고통 당하는 이웃도 하느님의 모상임을 깨닫게 될 때, 그리고 이 진리의 결과를 이해하게 될 때 가난이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의 선교사인 우리도 할 일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29)




이러한 인식을 통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30) 이렇게 마더 데레사에게 있어 가난은 물질적인 한계성과 함께 정신적인 결여를 동시에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나눔의 정신은 가난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가난을 소유에 대한 해방이라는 복음적 가난으로 승화시킬 때 그 가난은 자유가 되고 기쁨이 됨을 알 수 있다.




4. 단순한 삶의 아름다움




마더 데레사의 인생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단순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앞에서 살핀 ‘버림받으신 예수’, ‘기도’, ‘가난’ 등은 모두 이 단순함 안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다.




“나의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해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분께 기도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것임을 압니다.”31)




하느님께 가는 단순한 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길.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삶의 바탕은 겸손32)이다. 그녀에게 겸손은 나를 아는 것이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며 사랑을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사랑을 낳고, 자신에 대한 지식은 겸손을 낳기 때문입니다.”33)


“당신은 멸시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멸시는 당신의 전 생애를 거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겸손은 당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34)




자신을 아는 겸손, 멸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겸손은 마더 데레사가 행한 많은 활동들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마더 데레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간 이들은 그녀의 업적보다는 소박하고 겸손한 그녀의 모습에서 더 큰 감명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더 데레사의 삶을 통해서 단순함이 지니는 엄청난 위력들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높은 신학적 지식이 없었으나35) 사람들을 신앙에로 이끄는 삶의 단순한 모범이 있었던 것이다.36)


그녀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들도 단순하다. 그녀는 단지 하느님과의 단순한 만남만을 가르칠 뿐이다.37) 그녀의 활동들도 단순하다. 그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볼뿐이다. 그녀의 이러한 단순함에 대한 비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38) 그녀의 체계적이지 못한 일 처리는 늘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단적인 예로, 그녀의 공동체는 자원 봉사자들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정해진 규칙이 없다. 단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즉각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39)


이러한 마더 데레사의 단순성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은 그녀의 수도명인 데레사이다. 그녀는 1931년 첫 서원에서 수도명을 ‘예수 아기의 성녀’, ‘예수의 작은 꽃’으로 유명한 리지외(Lisieux)의 데레사(1873-1897)를 택했다.




“데레사는 ‘나의 작은 길은 영적인 어린이 됨의 길, 절대적인 신뢰와 자기 포기의 길이다’ 라고 했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자신을 ‘아기 예수의 손에 있는 작은 공’으로 비유한 반면 마더 데레사는 신뢰와 자기 포기라는 단순한 길을 좀더 실제적으로 표현하여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있는 연필’이라고 불렀다.”40)


Ⅵ. 나오면서




마더 데레사는 확실히 남다른 삶을 살았다. 그녀는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봉쇄 수도원에 입회하였으며 젊은 시절을 거기서 보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의 성소는 봉쇄 수도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질링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계시를 받고 자신의 삶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봉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그녀의 삶은 놀라웠다. 그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에게 즉각적인 사랑을 베풀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 버려진 채 죽어 가는 이들, 마약 중독자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으며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일생을 바쳤다. 1979년 그녀는 노벨 평화상을 받음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소박함과 단순함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변함없이 ‘버림받으신 예수’를 향한 열성으로 일생을 살았다.




우리는 마더 데레사라는 한 인물에 접근하는 도구로 에니어그램을 사용하였다. 그녀에게서는 2유형의 특징인 ‘사랑’과 ‘봉사’, ‘인간 관계’ 등을 중시하는 모습이 잘 드러났다. 이런 마더 데레사 안에서 이루어진 영적 성장을 에니어그램이 제공하는 ‘화살이론’을 통해서 조명하였다. 화살이론은 개인이 자신의 유형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화살이론의 화살들은 인간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충동의 방향을 가리킨다. 이것은 대부분이 무의식적인 충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거슬러 성장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는 2유형의 부정적인 충동을 거슬러서 완성된 2유형의 아름다운 특징들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혼자 기도하기’, ‘하느님의 사랑에 의존하기’, ‘대가 없이 봉사하기’ 등이다.  그러므로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는 마더 데레사의 인간적인 성숙과 영적인 성숙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녀는 2유형이 빠져들기 쉬운 ‘교만’, ‘불안’ 등의 감정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해결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본 로레토 봉쇄 수도원의 생활은 그녀가 어떻게 2유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되었다.


이런 결과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마더 데레사의 구체적인 영성을 살펴보았다. 마더 데레사 영성의 특별함은 무엇보다도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사랑이다. 마더 데레사가 봉쇄 수도원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버림받으신 예수의 모습을 관상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 질병, 소외, 고통 등의 인간적인 한계에 대해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이러한 고통들 안에서 함께 신음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봄으로써 그 고통의 의미를 한층 더 승화시켰다. 그녀에게 있어 가난한 이들과 소외 받은 이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과 봉사는 인간적인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이러한 깊은 신앙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녀의 사랑의 실천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별히 신앙에로 사람들을 이끄는 힘을 발휘했다.


또한 우리 작업의 초점은 마더 데레사가 놀라운 활동 중에서도 늘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더 데레사는 단순한 활동가도 아니며 전적인 관상가도 아니다. 그녀는 그토록 많은 활동 중에서 늘 관상가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관상-활동가였다. 그래서 그녀의 업적은 더욱 빛이 난다.




이상의 결과들을 토대로 두 가지 제언(提言)을 해보고자 한다.


먼저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제언이다. 400년전 이냐시오 성인(1491-1556)은 영의 식별(discernment of spirits)에 대한 세밀한 기준들을 제시했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으로 영성수련(靈性修鍊)의 핵심을 이루며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획일적인 성격과 시대적인 괴리감 때문에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개인의 차이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보완으로 에니어그램과 화살이론을 제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의 식별이 하느님의 영과 악의 영을 구별짓는 기준을 제공하였듯이, 에니어그램의 화살이론은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성장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과 부정적인 방향을 구별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특히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기에 그 적용에 있어 훨씬 더 구체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원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화살이론은 구체적인 영성수련의 체계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마더 데레사의 영성을 통한 제언이다. 우리의 영성생활은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기도에 열심한 사람은 세상의 일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으며, 활동에 열심한 사람은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봉사활동과 관상을 연결시킨 마더 데레사의 모범은 중요하다. 마더 데레사는 양극단의 조화를 이룬 인물이다. 그녀는 세상과 교회, 활동과 관상이라는 대립되기 쉬운 극단들을 봉사 안에서 슬기롭게 조화시켰다. 그녀가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관상해 냈듯이 현대인들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버림받으신 예수께 대한 영성과 성체와 가난한 이들을 동시에 보는 마더 데레사의 영성은 크게 본받을 만 하다.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할 때 진정한 의미의 투신(投身)이 가능할 것이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이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작업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마더 데레사를 살핀 지금까지의 작업은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에서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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