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사에 관한 연구는 순교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전기를 편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본연의 역사서술보다는 순교자들을 본받고 현양하려는 신심에서, 또는 장차 그들의 시복(諡福)에 필요한 그들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려는 의도에서였다. 순교자에 관한 최초의 전기들은 서한형식을 취한 것으로서 1797년 구베아(Gouvea) 주교의 서한(Epistola Episcopi Pekinensis ad Episcopum Caradrensem)과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이다. 그 후 열전(列傳) 형식의 순교자전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기해일기≫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있어서도 본연의 역사서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약용(丁若鏞)은 만년에 ≪조선복음전래사≫(朝鮮福音傳來史)를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은 공서파(攻西派)의 대표격인 이기경(李基慶)의 ≪벽위편≫(闢衛編)을 의식하고 정약용이 신서파(信西派)를 대표하여 그것을 반박하고자 저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한국에 진출하자 순교사(殉敎史)를 위시하여 한국 천주교회 전반에 관한 역사를 서술하고자 이에 관한 자료수집과 편찬에 착수하였다. 1874년 파리에서 상 · 하 2책으로 간행된 유명한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는 바로 재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꾸준한 연구활동의 결정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한 자료와 증언을 수집하고 편집하는 일을 주도한 선교사는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였다. 그는 여러 순교자들의 전기 외에도 조선사와 조선순교사에 관한 2권의 비망기(備忘記)를 남겼는데 달레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한국천주교회사≫를 간행할 수 있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가 출간된 이후 이에 비길만한 연구업적은 나오지 않았고 다만 시복수속에 필요한 자료집들이 간행되었을 뿐이다.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관변측 기록에서 시복후보자 명단에 오른 순교자들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여 프랑스어로 두 권의 자료집을 간행하였다(Documents relatifs aux Martyrs de Coreen de 1839 et 1846, Hongkong 1924; Documents relatifs aux Martyrs de 1866, Hongkong 1925). 1925년 시복식을 전후하여 한국교회와 한국의 순교복자들을 소개하는 두 권의 단행본이 나왔는데 하나는 ≪한국의 천주교≫(Le Catholicisme en Coree, Hongkong 1924)이고 또 하나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저명한 역사가인 로네(A. Launay)가 저술한 ≪한국순교복자 79위전≫(Martyrs Francais et Coreens, Paris 1925)이다. 전자는 통속적인 약사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학술적인 저술에 속하는 것이다. 피숑(L. Pichon, 宋世興) 신부는 1930년대에 한국 천주교회의 전사(前史)와 초기교회사에 관한 논문들을 교회 정기간행물에 발표하였는데 파리 외방전교회원으로서 이런 수준 높은 논문들을 발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무렵 일본인 학자들도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야마구찌(山口正之), 오다(小田省吾), 아까끼(赤木仁兵衛), 이시이(石井壽夫) 등이 주로 초기 교회사에 관한 논문들을 1930년에서 1943년에 걸쳐 여러 학술지(靑丘學叢, 史學雜誌, 歷史學硏究, 東洋史硏究, 基督敎史硏究)에 발표하게 되었다. 그들의 연구가 식민지사관을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었다 할지라도 처음으로 근대적 역사방법론을 적용했다는 점, 또한 사실적 탐구에 그치지 않고 사상적인 면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사연구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또한 이 시기에 2명의 아마추어 사가가 2권의 단행본을 간행했는데 하나는 구스다(楠田斧三郞)의 ≪조선천주교소사≫(朝鮮天主敎小史, 1933)이고 또 하나는 우라까와(浦川和三郞)의 ≪조선순교사≫(朝鮮殉敎史, 1944)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한 연구는 광복과 더불어 비로소 한국인에 의해 주도되고 또한 본연의 연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는 연구는 연구인구의 증가, 연구주제의 다양화, 자료의 수집과 간행, 연구기관의 설립 등 여러 점에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처음에 연구를 주도한 사학자들은 유홍렬(柳洪烈) 박사와 주재용(朱在用) 신부 등 소수에 불과했으나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그 수가 급속도로 증가되었다. 고무적인 것은 외국에서 사학을 전공한 성직자들과 학계의 소장학자들이 많이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연구인구의 증가는 자연 연구주제의 폭을 넓힘으로써 다각적인 연구를 초래하였다. 특히 사학자들과 소장학자들의 참여로 종래의 순교나 선교중심의 연구에서 교회의 문화적 역할 전반에 관한 연구로 확대되고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다각적인 연구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간행으로 더욱 촉진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 교회사연구소를 위시하여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소, 호남교회사연구소, 영남교회사연구소 등 교회사 연구기관의 설립으로 학자들간의 연대성이 형성되고, 더욱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을 기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 교회사연구소는 그간 연구발표회와 교회사간담회를 통해, 각종 자료집과 연구지의 간행을 통해 연구가들에게 발표의 광장을 열어주고, 공동연구를 진행시킴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 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崔奭祐)
[참고문헌] 洪以燮, 韓國基督敎史硏究小史, 白藥濬博士還甲紀念, 國學論叢, 思想界社, 1955 / 李元淳, 韓國天主敎會史硏究小史, 崔奭祐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 趙珖, 韓國天主敎會史關係 論著의 整理, 崔奭祐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 崔奭祐, 韓國敎會史는 어떻게 敍述되어 왔는가. 韓國敎會史의 探求,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