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한] 洪大容

홍대용(1731∼1783). 실학자.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 홍지(洪之), 본관은 남양(南陽), 역(櫟)의 아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門人). 북학파(北學派)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군국(軍國)과 경제(經濟)에 관한 학문에 전심하였다. 1765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가는 숙부 홍억(洪檍)을 수행, 북경에서 엄성(嚴誠), 반정균(潘庭均), 육비(陸飛) 등과 친교를 맺고 천주당(天主堂)에서 서양문물을 견학하는 한편 예수회 선교사로 당시 흠천감정(欽天監正)이던 할레르슈타인(Hallerstein, 劉松齡)과 부감(副監)이던 고가이슬(Gogeisl, 鮑友官) 신부들을 만나 서구 과학기술과 천주교에 대해 토론한 후 여러 서학서를 갖고 귀국하였다. 1775년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을 거쳐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 감찰(監察), 태인현감(泰仁縣監)을 역임하고 1780년 영주군수(榮州郡守)가 되었다. 지구의 자전을 설파했고 균전제(均田制), 부병제(府兵制)를 토대로 한 경제정책과 8세 이상의 모든 아동들을 취학시켜야 한다는 교육제도를 주장했으며, 또 사간원(司諫院), 사헌부(司憲府) 등 간쟁기관(諫爭機關)을 폐지하고 모든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어야 할 것과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장정이 노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 봉건적 신분제도의 타파를 부르짖었다. 또한 서학 수용에 있어서는 과학기술적인 서학의 기적 측면(器的 側面)은 수용하되 윤리적인 이적측면(理的 側面)은 배격하는 북학파 고유의 이원론적(二元論的) 입장을 고수하였다. 저서로 ≪담헌설총≫(湛軒說叢)이 있으며 편저로 ≪건정필담≫(乾淨筆談), ≪의산문답≫(毉山問答), ≪유포문답≫(劉鮑問答), ≪주해수용≫(籌解需用), ≪담헌연기≫(湛軒燕記), ≪임하경륜≫(林下經綸), ≪사서문의≫(四書問疑), ≪삼경문답≫(三經問答), ≪심성문≫(心性問), ≪계방일기≫(桂坊日記), ≪항전척독≫(抗傳尺牘) 등이 있다.

[참고문헌] 熱河日記 / 儒敎淵源 / 文一平, 實事求是派의 學風, 湖岩全集, 권2, 1939 / 金聖七, 燕行小攷, 歷史學報, 1960 / 朴鍾鴻, 韓國에 있어서의 近代的인 思想의 推移, 大東文化硏究, 1963 / 千寬宇, 洪大容, 韓國의 人間像, 제4권 / 趙珖, 洪大容의 政治思想 硏究, 民族文化硏究, 第14號,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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