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8-14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1. 말씀읽기: 루카 2,8-14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 말씀연구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신분이 고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멸시받던 목자들에게 알려집니다. 그 이유는 그 밤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 목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근심 걱정 속에서 잠들어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양들을 돌보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주변을 경계하던 그들에게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목자들은 멸시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그다지 가리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목자들에게는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자, 세관원, 여관주인들은 재판관이나 증인으로서 부적합한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멸시당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방목으로 기르는 가축들은 축사에서 기르는 가축들과는 대조적으로 빠스카 절기부터 가을 우기까지, 곧 3월부터 11월까지 밤낮으로 풀밭에서 지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자들은 도둑이나 야생 동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축들을 울타리나 양 우리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목자들에게는 가축들을 보살피고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뭇가지로 지은 오두막을 이용하여 밤에는 휴식을 취하고 일기가 불순할 때에는 그곳으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목자들은 주위를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목자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천사는 탄생한 아기를 구세주로 선포하면서 찬양합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구원의 때에 오실 그 사제요 왕이십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노래는 성주간 첫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이 외치던 환호 소리와도 관계됩니다. 군중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주의 이름으로 외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19.18).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목자들은 그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깨닫게 될 표징을 받았는데,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징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바와 정 반대의 표징입니다. 연약한 갓난아기가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포대기에 싸여 있는 갓난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주님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그저 감사하면서 따를 뿐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두고 한 말이 그분의 탄생에 있어서도 해당됩니다.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조롱거리였다(1코린 1,23).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1코린 1,25).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천사의 무리들이 기쁜 소식을 전한 그 천사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옛 사람들에 의하면, 하늘의 군대란 수많은 별무리였고 이 별들은 하늘에 각자 자기의 길과 지리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또한 별들을 움직이는 천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시종들입니다. 하느님은 “야훼 사바옷(군대들의 주님)”으로 불려지시기도 합니다.



 천사들의 노래는 메시아에 대한 환호입니다. 이 노래는 원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활동의 선포이고, 기도가 아니라 장엄하고도 감사에 넘친 흠숭 행위입니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구절의 천사들의 노래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하늘과 땅에, 즉 하느님과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듣게 됩니다. 그분의 탄생이 하늘과 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우주적임을 뜻합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십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 곧 하느님의 찬란한 광채이십니다(히브리 1,3).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아기의 탄생이 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이사야 9,5).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구원의 축복은 평화에 포함됩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의 효과로서, 그 계약은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됩니다(이사야 54,10). 평화는 기쁨의 극치인 화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메시지는 “평화의 복음(에페소 6,15)입니다. 예수님은 곧 평화 그 자체이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1.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았을 때, 그분을 그리스도로 알아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초라한 아기의 본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올까요?



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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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8-14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1. 말씀읽기: 루카 2,8-14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 말씀연구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신분이 고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멸시받던 목자들에게 알려집니다. 그 이유는 그 밤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 목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근심 걱정 속에서 잠들어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양들을 돌보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주변을 경계하던 그들에게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목자들은 멸시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그다지 가리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목자들에게는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자, 세관원, 여관주인들은 재판관이나 증인으로서 부적합한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멸시당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방목으로 기르는 가축들은 축사에서 기르는 가축들과는 대조적으로 빠스카 절기부터 가을 우기까지, 곧 3월부터 11월까지 밤낮으로 풀밭에서 지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자들은 도둑이나 야생 동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축들을 울타리나 양 우리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목자들에게는 가축들을 보살피고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뭇가지로 지은 오두막을 이용하여 밤에는 휴식을 취하고 일기가 불순할 때에는 그곳으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목자들은 주위를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목자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천사는 탄생한 아기를 구세주로 선포하면서 찬양합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구원의 때에 오실 그 사제요 왕이십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노래는 성주간 첫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이 외치던 환호 소리와도 관계됩니다. 군중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주의 이름으로 외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19.18).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목자들은 그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깨닫게 될 표징을 받았는데,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징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바와 정 반대의 표징입니다. 연약한 갓난아기가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포대기에 싸여 있는 갓난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주님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그저 감사하면서 따를 뿐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두고 한 말이 그분의 탄생에 있어서도 해당됩니다.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조롱거리였다(1코린 1,23).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1코린 1,25).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천사의 무리들이 기쁜 소식을 전한 그 천사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옛 사람들에 의하면, 하늘의 군대란 수많은 별무리였고 이 별들은 하늘에 각자 자기의 길과 지리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또한 별들을 움직이는 천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시종들입니다. 하느님은 “야훼 사바옷(군대들의 주님)”으로 불려지시기도 합니다.


     천사들의 노래는 메시아에 대한 환호입니다. 이 노래는 원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활동의 선포이고, 기도가 아니라 장엄하고도 감사에 넘친 흠숭 행위입니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구절의 천사들의 노래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이 하늘과 땅에, 즉 하느님과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듣게 됩니다. 그분의 탄생이 하늘과 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우주적임을 뜻합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십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 곧 하느님의 찬란한 광채이십니다(히브리 1,3).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아기의 탄생이 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이사야 9,5).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구원의 축복은 평화에 포함됩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의 효과로서, 그 계약은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됩니다(이사야 54,10). 평화는 기쁨의 극치인 화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메시지는 “평화의 복음(에페소 6,15)입니다. 예수님은 곧 평화 그 자체이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1.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았을 때, 그분을 그리스도로 알아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초라한 아기의 본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올까요?


    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2. 저녁노을 님의 말:

    1. 어린 시절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 예수님 모습이 담긴 카드를 보면 참 예쁘다.
    그리고 성탄절 새벽이면 성가대가 와서 불러 주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노래로 가슴이 설레고 설날보다 더 챙기셨던 아버지의 배려로
    떡국을 끓여 찬송하던 청년들을 먹이시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구유에 누운 아기를 한번도 초라하게 느껴 본적이 없었다.
    그 느낌은 최근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반짝이는 불빛과 주렁 주렁 찬란하게 달린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수님을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0여년 전 우리가 사업에 실패해서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을 때
    모든 것 다 버리고 미국으로 오라는 동생의 권고가 그럴 듯하고 솔깃했다.
    미국에 와서 돈벌어 다시 한국에 가서 빚갚으면 되지않겠느냐고 했었다.
    고민 고민하다 성경책을 펼쳤다. 그 때 내 눈에 들어 온 귀절은
    “네가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나는 너에게서 영광을 보리라.” 였다.
    이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미국행을 포기하여 그 어렵고 굴욕적인 시간들을 견디게 했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해석한 “영광”의 의미와 지금 생각하는 “영광”의 의미는 다르다.
    내가 참고 견디면 하느님은 내게 복을 많이 주시어
    실추된 내 명예를 살려 주시리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나의 변화된 모습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비워 내야하고 목자들처럼 깨어 있어야 하는지….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할 자신과의 싸움, 악과의 싸움,,,,
    내가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쌓아 올려야 할
    그 탑은 각고의 노력과 하느님의 전폭적인 은총으로만이 가능할 것이다.

  3. 저녁노을 님의 말:

    1. 어린 시절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 예수님 모습이 담긴 카드를 보면 참 예쁘다.
    그리고 성탄절 새벽이면 성가대가 와서 불러 주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노래로 가슴이 설레고 설날보다 더 챙기셨던 아버지의 배려로
    떡국을 끓여 찬송하던 청년들을 먹이시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구유에 누운 아기를 한번도 초라하게 느껴 본적이 없었다.
    그 느낌은 최근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반짝이는 불빛과 주렁 주렁 찬란하게 달린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수님을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20여년 전 우리가 사업에 실패해서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을 때
    모든 것 다 버리고 미국으로 오라는 동생의 권고가 그럴 듯하고 솔깃했다.
    미국에 와서 돈벌어 다시 한국에 가서 빚갚으면 되지않겠느냐고 했었다.
    고민 고민하다 성경책을 펼쳤다. 그 때 내 눈에 들어 온 귀절은
    “네가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나는 너에게서 영광을 보리라.” 였다.
    이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미국행을 포기하여 그 어렵고 굴욕적인 시간들을 견디게 했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해석한 “영광”의 의미와 지금 생각하는 “영광”의 의미는 다르다.
    내가 참고 견디면 하느님은 내게 복을 많이 주시어
    실추된 내 명예를 살려 주시리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나의 변화된 모습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비워 내야하고 목자들처럼 깨어 있어야 하는지….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할 자신과의 싸움, 악과의 싸움,,,,
    내가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쌓아 올려야 할
    그 탑은 각고의 노력과 하느님의 전폭적인 은총으로만이 가능할 것이다.

  4. ^*^ 님의 말: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시는 저녁노을님의 모습에 이미 환히 웃고 계시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멋진 모습으로 말씀안에 머무르시니…..
    사랑이 있는 것엔 늘 눈이 부실정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잖습니까!
    좋은 묵상안에서 행복했습니다.

  5. ^*^ 님의 말: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시는 저녁노을님의 모습에 이미 환히 웃고 계시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멋진 모습으로 말씀안에 머무르시니…..
    사랑이 있는 것엔 늘 눈이 부실정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잖습니까!
    좋은 묵상안에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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