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신(?~1792). 한국 천주교의 창설을 주도한 3대 인물의 하나. 세례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호는 이암(移庵). 조선조 중기의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의 사위이며 권철신(權哲身)의 아우. 1784년 9월(음) 이벽(李檗)의 권유로 즉시 천주교에 입교, 천주교의 열렬한 전파자가 되었으며 특히 제자 중 이존창(李存昌)과 유항검(柳恒儉)을 입교시킴으로써 복음을 멀리 호서 · 호남 지방에까지 전하였다. 1785년 명례방(明禮坊) 김범우(金範禹) 집에서 종교집회를 가졌을 때 권일신도 그의 아들 권상문(權相問)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때 형조관리에게 발각되어 검거되고 성물이 압수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중 김범우만 형벌을 받고 권일신 등은 사대부 집안의 자제라 훈방(訓放)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형조로 들어가 성상(聖像)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 뒤 그는 소위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 때 이승훈으로부터 신부로 임명되어 한때 성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의 여파로 홍낙안(洪樂安) 등이 권일신을 천주교의 교주(敎主)라고 고발해서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심한 고문에도 배교치 않아 사형시킬 것을 상소하였지만 정조(正祖)는 사형을 허락지 않고 제주도로 유배시킬 것을 명하였다. 옥에서 나와 유배지로 떠나기에 앞서 서울에 머물러 있는 동안 형조에서는 그에게 팔순 노모에 대한 불효를 구실로 유혹하였으므로 그는 이에 굴복하였다. 그리하여 감형(減刑)되어 예산(禮山)에 유배키로 되었다. 그는 노모를 만나 본 뒤 유배지로 가는 도중 옥에서 받은 상처로 객사(客死)하였다. 때는 1792년 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