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다
1. 말씀읽기:루카 9,37-43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다 (마태 17,14-18 ; 마르 9,14-27)
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 제자들 참으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마귀 들린 아이를 고쳐주려 했다가 고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저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저런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가 가짜라는 것이 들통 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나의 모습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이 제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거룩한 변모가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가서 군중들을 만나게 되십니다. 그곳에는 마귀를 쫓아내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있는 제자들과 마귀를 쫓아내달라고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마귀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절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식이 병들어 있으면 그 부모의 마음은 그보다 더 아픕니다.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①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②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③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렇게 아이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증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열중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열을 내게 하고,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것, 공동체 안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것. 그리고 그런 모습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것. 어찌 보면 그런 나의 모습도 마귀 들린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휴. 부끄러워라. 그냥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할 것이지 제자들이 못 고쳤다고 왜 고자질을 하는 것인지…,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자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고쳐달라고.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 사도, 야고보, 요한 사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하고 내려온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부탁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공동 운명체이니 함께 자신들의 부족한 신앙을 부끄러워해야 했을 것입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그분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이의 청을 한번도 외면하신 적이 없는데 갑자기 불평을 털어 놓으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고, 거룩한 변모를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돌아온 상태입니다.
메시아의 고통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으며 제자들까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사람들의 무거운 불신의 태도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에 대한 배은망덕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홀로 기도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밤을 새워가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병자의 아버지와 군중들입니다. 병자의 아버지는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고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제자들을 조롱하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그들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하는 것이 있어도 부담을 주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고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지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라는 팀의 주전 선수들이 빠진 상태니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었으나 아직 견고하지 못하니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신앙이 견고해지면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데려오게 하시어 그를 고쳐 주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것처럼 한 마디 명령으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마귀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서 예수님 앞에서 물러갑니다. 그리고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기적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저 사람에게 신앙을 권유할 수 있을까? 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신앙을 권유할 수 있을까? 남들이 나를 비웃지는 않을까?
우리가 믿음으로 산을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인이 해야 될 일은 인간을 변화시켜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신앙인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요, 아픈 사람을 치유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당당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은 가능하게 됩니다. 믿음의 힘으로…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놀랍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바로 나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그래서 나와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셔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누군가 나에게 기도를 청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합니까?
2. 내가 봉사하고 있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일은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나에게 맡겨진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까?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다
1. 말씀읽기:루카 9,37-43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다 (마태 17,14-18 ; 마르 9,14-27)
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 제자들 참으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마귀 들린 아이를 고쳐주려 했다가 고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저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저런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가 가짜라는 것이 들통 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나의 모습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이 제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거룩한 변모가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가서 군중들을 만나게 되십니다. 그곳에는 마귀를 쫓아내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있는 제자들과 마귀를 쫓아내달라고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마귀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절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식이 병들어 있으면 그 부모의 마음은 그보다 더 아픕니다.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①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②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③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렇게 아이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증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열중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열을 내게 하고,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것, 공동체 안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것. 그리고 그런 모습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것. 어찌 보면 그런 나의 모습도 마귀 들린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휴. 부끄러워라. 그냥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할 것이지 제자들이 못 고쳤다고 왜 고자질을 하는 것인지…,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자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고쳐달라고.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 사도, 야고보, 요한 사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하고 내려온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부탁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공동 운명체이니 함께 자신들의 부족한 신앙을 부끄러워해야 했을 것입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그분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이의 청을 한번도 외면하신 적이 없는데 갑자기 불평을 털어 놓으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고, 거룩한 변모를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돌아온 상태입니다.
메시아의 고통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으며 제자들까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사람들의 무거운 불신의 태도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에 대한 배은망덕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홀로 기도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밤을 새워가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병자의 아버지와 군중들입니다. 병자의 아버지는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고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제자들을 조롱하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그들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하는 것이 있어도 부담을 주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고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지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라는 팀의 주전 선수들이 빠진 상태니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었으나 아직 견고하지 못하니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신앙이 견고해지면 못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데려오게 하시어 그를 고쳐 주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것처럼 한 마디 명령으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마귀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서 예수님 앞에서 물러갑니다. 그리고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기적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저 사람에게 신앙을 권유할 수 있을까? 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신앙을 권유할 수 있을까? 남들이 나를 비웃지는 않을까?
우리가 믿음으로 산을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인이 해야 될 일은 인간을 변화시켜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신앙인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요, 아픈 사람을 치유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당당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은 가능하게 됩니다. 믿음의 힘으로…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놀랍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바로 나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그래서 나와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셔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누군가 나에게 기도를 청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합니까?
2. 내가 봉사하고 있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일은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나에게 맡겨진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