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46-50:가장 높은 사람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가장 높은 사람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1. 말씀읽기: 루카 9,46-50

가장 큰사람 (마태 18,1-5 ; 마르 9,33-37)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다 (마르 9,38-40)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2. 말씀연구

가끔은 서열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누가 높으냐? 누가 어디에 앉아야 되고, 누가 먼저 말해야 하고…, 그런데 그 순서가 잘못되면 서로 불편해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마 누가 먼저 뽑힘을 받았느냐? 누가 더 큰 일을 했고, 누가 더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누가 더 능력이 되고…, 그러면서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제일 작은 사람이 제일 큰 사람이라고…,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자장면 3그릇 먹고 공기밥 한그릇 시키는 사람.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9,33-34절에서도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라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되어 가고 있는 이 단체에 그러한 허영심이 깃들면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빨리 제거해 주십니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선택받은 어린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투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사랑스럽게 감싸시면서 그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신 아이일 수도 있고,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아이가 아닐까요?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랍비들이 권장하고 찬양한 선행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을 때, 제자의 신분과 형제애의 정신으로 했을 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그런데 유혹이 시작됩니다.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쫓는 의식은, 당시 유다인이나 이방인이 잘 행하던 일이었습니다. 이집트에는 마술에 대하여 기록한 파피루스가 남아있고, 악마를 쫓아 낼 때 사용한 이름도 거의가 유다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마양식 속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한다.” 이 말은 마술가가 그리스도를 다소나마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마리아 사람 시몬이 사도 베드로에게서 돈을 주고 기적의 힘을 사려고 하였습니다(사도8,18 이하) 당시에는 그런 루의 마술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요한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자기 행위가 잘못이 아니었나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가 드러나지 않고, 서로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신자였구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신자였구나…”나는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역시 신자는 다르구나…”하는 평가를 받고 살 것 입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함께 일을 하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만 된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의 표면적인 결과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의향을 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랑은 더 이상 일 못하겠어!”라는 말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이름 모르는 구마사와 스큐아의 아들들(사도행전19,13-17)의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다 다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이지만, 오늘 요한이 말하는 구마는 불쌍한 사람을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주려는 것이고, 뒤의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구마사는 적어도 함축적으로 예수님의 권위와 세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물론 사도들과 같은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보면서 그는 결국 믿음에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금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교회의 봉사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신자가 아니면서도 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2. 신자이면서도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을 거부하는 행동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내가 그에게 권고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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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9,46-50:가장 높은 사람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가장 높은 사람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1. 말씀읽기: 루카 9,46-50

    가장 큰사람 (마태 18,1-5 ; 마르 9,33-37)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다 (마르 9,38-40)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2. 말씀연구

    가끔은 서열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누가 높으냐? 누가 어디에 앉아야 되고, 누가 먼저 말해야 하고…, 그런데 그 순서가 잘못되면 서로 불편해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마 누가 먼저 뽑힘을 받았느냐? 누가 더 큰 일을 했고, 누가 더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누가 더 능력이 되고…, 그러면서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제일 작은 사람이 제일 큰 사람이라고…,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자장면 3그릇 먹고 공기밥 한그릇 시키는 사람.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9,33-34절에서도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라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교회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조직되어 가고 있는 이 단체에 그러한 허영심이 깃들면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빨리 제거해 주십니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선택받은 어린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투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사랑스럽게 감싸시면서 그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신 아이일 수도 있고,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 집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아이가 아닐까요?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랍비들이 권장하고 찬양한 선행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을 때, 제자의 신분과 형제애의 정신으로 했을 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그런데 유혹이 시작됩니다.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쫓는 의식은, 당시 유다인이나 이방인이 잘 행하던 일이었습니다. 이집트에는 마술에 대하여 기록한 파피루스가 남아있고, 악마를 쫓아 낼 때 사용한 이름도 거의가 유다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마양식 속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한다.” 이 말은 마술가가 그리스도를 다소나마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마리아 사람 시몬이 사도 베드로에게서 돈을 주고 기적의 힘을 사려고 하였습니다(사도8,18 이하) 당시에는 그런 루의 마술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요한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자기 행위가 잘못이 아니었나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가 드러나지 않고, 서로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신자였구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도 신자였구나…”나는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역시 신자는 다르구나…”하는 평가를 받고 살 것 입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함께 일을 하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만 된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의 표면적인 결과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의향을 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랑은 더 이상 일 못하겠어!”라는 말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이름 모르는 구마사와 스큐아의 아들들(사도행전19,13-17)의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다 다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이지만, 오늘 요한이 말하는 구마는 불쌍한 사람을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주려는 것이고, 뒤의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구마사는 적어도 함축적으로 예수님의 권위와 세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물론 사도들과 같은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보면서 그는 결국 믿음에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금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교회의 봉사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신자가 아니면서도 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2. 신자이면서도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을 거부하는 행동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내가 그에게 권고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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