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13,31-33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1. 말씀읽기:루카13,31-33

죽음에 직면하시는 예수님

31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마태 23,37-39)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참으로 멋진 말씀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 나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예수님을 향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고, 변함없이 내 일을 하는 것.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31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와 요르단 강 동쪽 베레아 지방에 포함된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년-기원후 39년)의 영토를 여행하고 계셨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예수님의 전도 활동이 골칫거리였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자기 신하들을 선동할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군중을 선통하여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영토 밖으로 내쫓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내면 로마인들과 대립하지 않아도 되고, 군중의 술렁거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헤로데의 사람들로서 “나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예수님의 여행은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활동을 정치적 모험으로, 그리고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교활함과 비열함을 모두 갖춘 한 마리 여우였습니다. 여우는 밤에는 은밀하게 도둑질을 하러 나가고 낮이 되어 위험할 때면 굴속에 숨습니다. 헤로데는 어떠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도 취하지 않고 교활하게 예수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였으며, 이 점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생명이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결정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앞으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그분의 사랑의 사업의 기간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분의 죽음의 날입니다. 이 사흘째 되는 날이 바로 예수님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이제 잠깐 동안만 계속될 것입니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큰 사업을 다하시려고 마련된 기간 동안 동네와 마을에서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가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도록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예언자를 죽이는 도성이라는 무서운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곳에서 죽어야만 하십니다.

 우리는 호세아 예언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야훼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6,2)” 이것은 예언자 호세아가 동족 에브라임과 유다의 입을 빌어 부른 참회의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 예언자는 그들에게 닥친 국가적 재난에서 하느님의 징벌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그들 모두에게 새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신비스러운 말씀은 예언자의 이 말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그 경우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죽은 이들로부터의 당신의 부활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시게 될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에 이어 예수님의 부활과 영광스럽게 되심이 따를 것 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 하느님 백성의 전 역사는 이 “사흘째 되는 날”을 구속의 날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행은 구원사의 과정에서 하느님이 하신 모든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죄, 즉 하느님을 거부하는 역사가 이제 그 정점에 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자녀들, 즉 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하느님의 보호 아래 두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새로운 말씀을 전하고자 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빙자하여 오만하게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자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들의 지도를 거부하였기에 파멸하고 말 것 입니다. 예루살렘의 위대함과 영광은 하느님께서 그 도시를 당신 거처로 삼으신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위대한 영광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도시에서 사형에 처해지셨을 때, 그 곳에는 재난이 닥쳤습니다.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철회되었으며, 예루살렘은 그 주민들에게 내맡겨졌습니다. 파멸이 예루살렘의 종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신 최후는 또한 예루살렘의 최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예레미야12,7)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했다고 해서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찬미를 드린다면 구원에 초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축복의 인사를 해야 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재림)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님을 뵙고 그렇게 말씀드렸다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고,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고, 지금 구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때에 가서(재림)는 아무리 내가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늦는다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될 것은 무엇이며,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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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13,31-33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1. 말씀읽기:루카13,31-33

    죽음에 직면하시는 예수님

    31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마태 23,37-39)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참으로 멋진 말씀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 나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예수님을 향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고, 변함없이 내 일을 하는 것.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31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와 요르단 강 동쪽 베레아 지방에 포함된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년-기원후 39년)의 영토를 여행하고 계셨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예수님의 전도 활동이 골칫거리였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자기 신하들을 선동할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군중을 선통하여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영토 밖으로 내쫓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내면 로마인들과 대립하지 않아도 되고, 군중의 술렁거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헤로데의 사람들로서 “나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예수님의 여행은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활동을 정치적 모험으로, 그리고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교활함과 비열함을 모두 갖춘 한 마리 여우였습니다. 여우는 밤에는 은밀하게 도둑질을 하러 나가고 낮이 되어 위험할 때면 굴속에 숨습니다. 헤로데는 어떠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도 취하지 않고 교활하게 예수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였으며, 이 점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생명이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결정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앞으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그분의 사랑의 사업의 기간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분의 죽음의 날입니다. 이 사흘째 되는 날이 바로 예수님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이제 잠깐 동안만 계속될 것입니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큰 사업을 다하시려고 마련된 기간 동안 동네와 마을에서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가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도록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예언자를 죽이는 도성이라는 무서운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곳에서 죽어야만 하십니다.

     우리는 호세아 예언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야훼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6,2)” 이것은 예언자 호세아가 동족 에브라임과 유다의 입을 빌어 부른 참회의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 예언자는 그들에게 닥친 국가적 재난에서 하느님의 징벌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그들 모두에게 새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신비스러운 말씀은 예언자의 이 말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그 경우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죽은 이들로부터의 당신의 부활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시게 될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에 이어 예수님의 부활과 영광스럽게 되심이 따를 것 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 하느님 백성의 전 역사는 이 “사흘째 되는 날”을 구속의 날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행은 구원사의 과정에서 하느님이 하신 모든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죄, 즉 하느님을 거부하는 역사가 이제 그 정점에 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자녀들, 즉 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하느님의 보호 아래 두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새로운 말씀을 전하고자 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빙자하여 오만하게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자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들의 지도를 거부하였기에 파멸하고 말 것 입니다. 예루살렘의 위대함과 영광은 하느님께서 그 도시를 당신 거처로 삼으신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위대한 영광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도시에서 사형에 처해지셨을 때, 그 곳에는 재난이 닥쳤습니다.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철회되었으며, 예루살렘은 그 주민들에게 내맡겨졌습니다. 파멸이 예루살렘의 종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신 최후는 또한 예루살렘의 최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예레미야12,7)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했다고 해서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찬미를 드린다면 구원에 초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축복의 인사를 해야 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재림)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님을 뵙고 그렇게 말씀드렸다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고,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고, 지금 구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때에 가서(재림)는 아무리 내가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늦는다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될 것은 무엇이며,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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