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16,19-31: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

1. 말씀읽기: 루카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부자와 라자로. 들을 때 마다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고, 부자는 너무도 풍족하여 라자로의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당시 계급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으니……, 내가 부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신분이 높음과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삶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는데 그는 종기투성이의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그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모습과 라자로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니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가끔은 자선을 베푸는 척 하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면서도 흐뭇해하면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자만하면서 떠벌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자가 라자로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생략형인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란 뜻입니다. 굶주려 배고픈 고통 속에서 살아온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도 손에 묻은 기름기나 기타의 것들은 물수건으로 닦지 않고 마른 빵으로 닦아 내었는데 손을 닦은 빵으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라자로의 이름처럼 하느님께서는 살아생전에는 라자로를 도우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생각해보며 그의 영생을 바라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불행을 하느님께서 방관하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하느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의 시간들은 보잘것없는 시간들인 듯합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그러다가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지상에서와는 반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나라로 갔고(아브라함 품),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즉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라자로의 시체는 가난뱅이들을 위한 무덤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품은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메시아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 때까지 의로운 영혼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기다리고 있던 처소를 말합니다.

부자는 죽어서 호화로운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인생역전.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식탁에서 귀한 옷을 입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던 부자, 그의 눈에 비친 라자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 자신의 대문 앞을 지저분하게 만드냐고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바라보는 눈빛. 내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눈에 들어온 라자로. 그는 지금 고통 속에 있지만 라자로는 기쁨 속에 있었으니. 부자는 무서운 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방울의 물을 청합니다. 인생 종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다 제 혀를 식히게 해 달라는 이 청. 너무도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모두 내세에서 불행에 빠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한번 결정된 것은 다시 번복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회가 있을 때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장 높은 선에다가 빽을 써야 합니다. 손을 쓰는 방법은 돈을 내거나 식사를 사거나 골프를 대접하거나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 보시기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빽을 쓰는 것입니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부자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서 자신은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형제들까지 닮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있도록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심부름꾼으로는 라자로를 생각합니다. 라자로는 자기 집을 알고 있고 언젠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적선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이 심부름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라자로를 보내어 다섯 형제들에게 경고하여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자는 청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 없었던 부자가 이제 고통 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청하고 있습니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 의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의와 사랑을 지키고 재산을 활용하여 좋을 일를 한다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실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하나가 가야만 들을까 말까 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매 금요일 금육한 것을 통해 주일 헌금 천 원 씩 더 올려 내고, 평일미사 한번이라도 더 나오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것은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기적도 그 목격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목격자에게 선량한 마음가짐과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나 예언자들의 신적 사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안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3. 나눔 및 묵상

1. 부자와 라자로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봅시다.





2. 세상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가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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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16,19-31: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자와 라자로

    1. 말씀읽기: 루카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부자와 라자로. 들을 때 마다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고, 부자는 너무도 풍족하여 라자로의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당시 계급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으니……, 내가 부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신분이 높음과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삶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는데 그는 종기투성이의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그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모습과 라자로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니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가끔은 자선을 베푸는 척 하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면서도 흐뭇해하면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자만하면서 떠벌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자가 라자로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생략형인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란 뜻입니다. 굶주려 배고픈 고통 속에서 살아온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도 손에 묻은 기름기나 기타의 것들은 물수건으로 닦지 않고 마른 빵으로 닦아 내었는데 손을 닦은 빵으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라자로의 이름처럼 하느님께서는 살아생전에는 라자로를 도우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생각해보며 그의 영생을 바라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불행을 하느님께서 방관하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하느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의 시간들은 보잘것없는 시간들인 듯합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그러다가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지상에서와는 반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나라로 갔고(아브라함 품),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즉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라자로의 시체는 가난뱅이들을 위한 무덤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품은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메시아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 때까지 의로운 영혼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기다리고 있던 처소를 말합니다.

    부자는 죽어서 호화로운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인생역전.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식탁에서 귀한 옷을 입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던 부자, 그의 눈에 비친 라자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 자신의 대문 앞을 지저분하게 만드냐고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바라보는 눈빛. 내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눈에 들어온 라자로. 그는 지금 고통 속에 있지만 라자로는 기쁨 속에 있었으니. 부자는 무서운 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방울의 물을 청합니다. 인생 종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다 제 혀를 식히게 해 달라는 이 청. 너무도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모두 내세에서 불행에 빠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한번 결정된 것은 다시 번복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회가 있을 때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장 높은 선에다가 빽을 써야 합니다. 손을 쓰는 방법은 돈을 내거나 식사를 사거나 골프를 대접하거나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 보시기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빽을 쓰는 것입니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부자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서 자신은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형제들까지 닮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있도록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심부름꾼으로는 라자로를 생각합니다. 라자로는 자기 집을 알고 있고 언젠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적선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이 심부름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라자로를 보내어 다섯 형제들에게 경고하여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자는 청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 없었던 부자가 이제 고통 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청하고 있습니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 의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의와 사랑을 지키고 재산을 활용하여 좋을 일를 한다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실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하나가 가야만 들을까 말까 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매 금요일 금육한 것을 통해 주일 헌금 천 원 씩 더 올려 내고, 평일미사 한번이라도 더 나오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것은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기적도 그 목격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목격자에게 선량한 마음가짐과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나 예언자들의 신적 사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안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3. 나눔 및 묵상

    1. 부자와 라자로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봅시다.



    2. 세상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가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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